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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w: 히브리서 강해 9(히 4:12-16)

2008년 10월 29일 수요성경공부 히브리서 강해 9
본문: 히 4:12-16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지난주에는 과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한 것은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서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가나안으로 400만이 진군했음에도 그들은 불순종과 범죄로 광야에서 객사했습니다. 따라서 너희도 복음과 천국의 약속이 있지만,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생활하라는 당부가 바로 히브리서의 내용입니다. 4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1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강퍅케 하지 않으면, 그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범죄에 빠지거나 불순종하게 해서 이스라엘처럼 실패하지 않게 한다는 겁니다. 4장 7절 하반절입니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오늘날 너희는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게만 하지 않으면 과거 이스라엘처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성공케 합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큰 특징은 ‘살아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 앞에서 마음만 닫지 않으면 반드시 살아있는 그 말씀이 우리로 안식에 들어가게 한다는 겁니다. 미안하지만 다른 종교의 경전들은 이미 화석화된 고전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편견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4서3경은 공자님의 말씀인데, 공자는 이미 2500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유교의 경전은 죽은 겁니다. 석가도 공자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인데, 그도 BC 500년대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경전인 신구약 성경은 지금도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구약은 약 3000년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하신 분이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운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말씀의 운동력은 대단합니다.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회개하고 결단하게 하고 새 출발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강퍅한데도 말씀을 들으면 감동이 있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운동력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말씀이기에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여간 말씀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통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빛 앞에서는 다 드러나고 폭로됩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왔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베드로의 죄성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님 앞에 서자 다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 많이 잡았는데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13절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따라서 말씀이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으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논리입니다.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관리하시기에 우리가 말씀을 붙잡는한 안식에 무사히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거 이스라엘의 율법과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그 질이 다릅니다. 과거에 주어진 율법은 돌판에 새겨진 말씀이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곧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곧 복음이시기에 과거 이스라엘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이렇게 하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5절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은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공감하며 긍휼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시거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고, 체휼하시는 분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겪는 시험과 고통을 주님이 친히 이 땅에서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님을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대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으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담대하라’는 겁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담대하게 주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사람은 자신감이 없을 때 담대하지 못합니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겁니다. 담대히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라는 겁니다. 왜냐면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 충분히 우리의 고통을 체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역동하는 말씀이신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객사하지 않고 저 영원한 천국까지 들어가도록 도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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