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내가 가는 길(욥 23:1-17)

20120816

내가 가는 길

욥 23:1-17


예레미야 선지자도 <여호와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신다>(렘 12:3)고 했는데, 욥도 지금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10절)고 합니다. 친구들은 그가 걸어 온 길, 걸어가는 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오직  지금 그가 당하는 고난만을 보고 정죄하기에 바쁜데 하나님은 자기가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신다는 욥의 고백이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신념이요 간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금 같이 되리라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

얼마나 지당한 말씀입니까? 어떤 금도 단련의 과정 없이 순금이나 정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가장 순수하고 순전한 순금으로 거듭나길 원한다면 혹독한 풀무불의 연단을 견디고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불순물이 다 타 없어지고 순도 99.9%의 순금으로 정련됩니다. 저질 금이나 순도가 낮은 18K 같은 금은 연단 과정이 짧거나 아예 생략된, 그래서 불순물이 많이 섞인 금을 말합니다. 불같은 시련이 올 때, 혹독한 연단이 닥칠 때 잘 견디며 잘 감수하십시오. 그 때가 바로 당신이 순도 높은 정금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며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순간입니다. 


그의 뜻을 이루리라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4절).

하나님은 그 뜻이 일정하십니다(13절). <일정하시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감히 돌이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지길> 기도하고, 주님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며 간구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뜻은 언제나 바르지 못하고 악하되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온전하고 참 되십니다. 그래서 늘 일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옳고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바르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쓴 잔을 앞에 놓고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신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죽어도 살지만 자신의 뜻을 고집하면 결국은 망합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이삭을 바치지 않고 인간적인 미련과 연민에 따라 처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은 하나님도 자식도 다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에 자식도 하나님도 다 새롭게 얻은 것입니다.


그를 두려워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15절).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떨어야 합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시며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직도 세상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정작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이 세상 모든 두려움이 상대화되면서 근본적으로 극복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 4:18)고 했습니다. 부디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세상에 대해 보다 담대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두려우신 존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