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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20812m 진리와 자유 그리고 해방(요 8:32,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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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20812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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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요 8:32, 갈 5:1</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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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진리와 자유 그리고 해방</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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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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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6 -->
<p class="p1"><span>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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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금주 수요일이 광복 67돌입니다. 유대인에게도 광복절이 있습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입니다. 그러면 여쭙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애굽에서 무려 430년간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의 영도로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광야를 떠돌았을망정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광복 이후, 해방 이후의 그들의 삶이 얼마나 떳떳한 자유인에 걸 맞는 삶이었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유인이었음에도 그들은 애굽의 망령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생활 가운데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늘 그들은 애굽의 노예살이를 그리워했습니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작당했습니다. 심지어는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며 먹던 음식을 그리워했습니다. 날마다 그런 타령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후에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간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과거 애굽에서 노예살이 하던 때에 비하면 긴 세월이 아니었으나, 우리가 일제 36년 식민지 노릇을 했는데 우리에 비하면 긴 세월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때도 참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언어를 쓰셨을 것 같습니까? 주님은 유대인이어서 히브리어를 사용했을 것 같으나, 아닙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때 세계화된 언어는 그리스어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헬라어를 쓰셨을까요?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아람어를 쓰셨습니다. &lt;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gt;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최후로 남기신 말씀인데, 그것은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는 고대 바벨론 말입니다. 바벨론에서 70년간 노예살이했던 후유증이 아람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소에도 아람어를 쓰셨습니다.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해서 신약성경을 기록한 겁니다. 일제 때 교육받으신 분들은 학교 때 일본말만 쓰도록 해서 지금도 연세 높으신 어른들은 일본말 잘 하십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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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본문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유는 어떤 자유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는 ‘너희가 자유를 위해 부름을 입었다’고 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까?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해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택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살 때는 전혀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죄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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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러면 문제는 우리가 지금 다 자유인인데, 얼마나 자유하냐는 겁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유인이십니까? 죄로부터 자유하십니까? 더 이상 죄에 덜미 잡혀 살지 않습니까? 죄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이라면 더는 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사느냐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죄로부터 자유하냐는 겁니다. 자유인이라는 규정에 걸맞게 사느냐는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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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런데 바울도 이 문제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입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자기가 원하는 것은 선인데, 자꾸만 죄를 짓는다는 겁니다. 로마서 7장 19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드디어 바울이 비명을 지릅니다.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게 누구의 고백입니까? 천하의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가 주후 57년경이고, 바울이 회심했을 때가 주후 약 40년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개종하고 이미 십 수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구원파 박옥수 같은 사람은 이 문제를 아직 완전히 구원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 넘어갑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도 죄 짓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구원, 완전한 중생을 알려준다며 자기 집단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 넘어갑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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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러면 거듭나고 죄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여기에 걸립니다. 내가 정말 예수 믿는 게 맞는가?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회의가 드는 것은 날마다 순간마다 죄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더는 마귀의 하수인이 아니라고 했는데, 여전히 우리는 죄를 밥 먹듯 합니다. 사실 우리 푸른교회 성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17년 동안 목회하며 처음부터 오늘까지 거의 이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자유인인데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현실, 자유인이 범하는 죄의 정체 말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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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귀의 하수인으로 살 때 범하던 죄나,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범하는 죄는 같은 죄입니다만, 성격은 구분됩니다. 전에는 마귀가 시켜서 범하는 죄라면, 지금은 옛 사람의 탄력, 관성의 법칙 때문에 범하는 죄입니다.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서나 우리 기질까지 달라졌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400년 동안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사탄의 하수인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몸에는 깊이 죄악의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개종하는 순간 그게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마귀가 시켜서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애굽을 그리워했듯이 아직도 우리는 죄에 대해 친화적입니다. 죄에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죄를 짓습니다. 거듭나고 새로워졌다는 것, 해방되고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법적 지위가 그렇다는 뜻이고, 아직도 우리의 기호, 취향, 정서는 죄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애굽타령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심으로써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우리는 다 홍해를 건넌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운명적으로 애굽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향수병에 걸려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우리 몸에 남아있는 죄악의 잔재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그렇고 바울도 그랬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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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니 평생 괴로워하며 살아야 합니까?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진리는 사도 바울이 깨달았던 진리입니다. 로마서 7장 마지막절까지도 괴로워하며 비명을 지르던 바울이 그 다음 장인 8장 1절에 들어서면서부터 달라집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절 이하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는 죄를 짓지 않는 게 아니라, 정죄함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도 옛 사람의 탄력 때문에 여전히 죄를 짓지만, 이제는 내가 지은 죄에 대해 단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성령의 법, 생명의 법의 지배만 받게 하셨습니다. 더는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할 법이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그것을 단죄할 법이 없으면 처벌하지 못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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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스라엘 사람이나 애굽 사람을 도덕적으로 보면 크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문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칠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신이 어린 양의 피가 칠해진 집은 유월했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애굽 사람의 집에 들어가 장자를 죽였습니다. 벼락 맞은 사람과 벼락 맞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없습니다. 도덕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고, 어떤 사람은 안 맞았습니까? 벼락을 맞은 사람은 벼락이 칠 때 그냥 노출되어 있었고, 벼락을 맞지 않은 사람은 피뢰침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십자가 아래 있기 때문에 벼락을 안 맞는 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죄가 더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죄 조차도 내게 선이 된다고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모순, 한계, 실수, 눈물입니다. 그게 궁극적으로는 내게 도움이 되고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죄가 내게 저주를 가져다주기는커녕 궁극적으로는 내게 복이 되고 있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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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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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토록 힘들고 괴로워하던 바울도 이 진리를 깨닫고 힘찬 개가를 부릅니다.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으니, 누가 의롭다 하신 이를 고발하며 정죄하겠냐는 겁니다. 광복절을 맞아 자유와 해방과 진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시며 바울처럼 감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기를 기원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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