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어찌해야(욥 23:1-9)

20120811

어찌해야

욥 23:1-9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성경은 천상천하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언하고자 해도 도무지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하소연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디에나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탄원에 늘귀 기울여 주십니다. 욥의 경우도 하나님은 다 들으셨고 이미 그의 갈망을 다 접수하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욥에게 있었습니다.


그의 처소에 나아갈 수 있으랴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3절).

엄밀하게 얘기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고 그분의 처소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찾아오셔야 하고 또 만나주셔야 합니다. 유한하고 제한적인 존재인 인생이 어찌 무한하시고 초월적이신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세상 모든 종교는 인생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구도의 종교요 상향식 종교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우리를 찾아오신 임마누엘의 하향식 종교입니다. 굳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지 마십시오. 단지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마음 문을 열고 영접하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 말씀은 불신자 전도용이 아니라 기성 신자들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임을 명심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랴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5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유교의 사서삼경이나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나 원하면 손쉽게 접하고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읽고 들으며 그 의미를 깨닫고 은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십시오. 성경은 천 수백 년에 걸쳐 기록되고 수집되고, 편집되고 정경으로 채택되고 번역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승된 기적 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언어로 수 십 명의 저자, 편집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놀라운 통일성과 일관된 사상과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저변에 성령의 역사가 작용하셨음을 뜻하며 따라서 성령의 조명으로 읽으면 누구나 깨닫고 축복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무더위 마저도 잊게 하는 깊고도 시원한 은혜에 흠뻑 빠지게 되실 겁니다.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9절).

욥은 지금 자신이 겪는 환난 때문에 도무지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탄식합니다. 마음은 조급하고 산란해져서 소스라치게 놀란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도 그가 안 계시고 뒤로 가도 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8절).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돌이켜도 그를 뵐 수 없다고 절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조급해 하며 발을 굴려도 결코 우리의 장단에  춤추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만의 시간표가 있으십니다. 흔히 우리는 경박하고 조급하여 오래 견디거나 참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거나 또 하나님을 위협하며 내 시간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게 관철되지 않으면 체념합니다. 인내가 믿음의 최대 미덕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하신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정말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