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5m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행 4:12, 갈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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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5m
행 4:12, 갈 1:7-8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오늘은 교단적으로 지키는 이단경계주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서 택했습니다.
여러분,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입니까? 지난 6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쪽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지구촌 전체를 지배하는 문화 트렌드입니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직역하면 모더니즘 이후입니다. 탈현대주의, 후기근대주의입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트렌드를 충분히 표현한 말이 못 됩니다. 사실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틀에 가두는 걸 싫어합니다. 규정하고 정의하는 걸 부정합니다. 그래서 해체주의라고도 합니다. 상대주의, 초현실주의, 초자연주의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편의상 그렇게 번역해서 붙인 것일 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 패턴은 그런 틀, 권위, 개념, 이성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냥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것, 기성의 권위 등을 치를 떨며 부정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부모님이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엔 선생님을,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랐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그런 권위에 도전합니다. 기존의 틀을 해체하자는 겁니다. 전에는 1등에게 박수를 보냈으나 요즘은 꼴찌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전에는 전체주의여서 유행이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유행을 따르면서도 개성을 추구합니다. 튀어야 인정받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 개체주의, 개성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원래 음악은 멜로디였습니다만, 요즘은 강렬한 비트만 남았습니다. 원래 화음이라는 게 음악입니다. 불협화음은 소음이었는데, 요즘은 불협화음이 음악입니다. 이런 게 요즘 인기 있는 하드코어 음악입니다.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쪽부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아파트를 지으면 붕어빵이었습니다. 한 집만 들어가 보면 다른 집은 안 봐도 됩니다. 요즘은 한 동에 수십 가구가 들어가 있어도 집마다 다릅니다. 맞춤형입니다. 내부구조가 다른 겁니다. 개인을 강조하고 개성을 강조해서 그렇습니다. 요즘의 트렌드가 바로 그런 겁니다. 이러한 경향과 풍조가 인정을 받습니다. 이게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따로 놀면 배제되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그림을 한 번 보십시오. 혼란스럽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 백남준 씨입니다. 우리가 보면 장난하는 것 같고 조잡하고 유치하고, 어떤 부분은 견딜 수 없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최고의 선구자입니다. 백남준 씨가 자기 설치미술 앞에서 넥타이를 잘랐습니다. 넥타이를 자른다는 게 무엇입니까? 기존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도끼로 악기를 막 내리쳤습니다. 이게 다 기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팝아트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팝아트는 쓰레기였습니다. 그림으로 쳐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만화 같은 그림이 수백억에 거래가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장르가 팝아트입니다. 요즘은 사람을 그려도 반듯하게 그리지 않고 부위별로 해체하고 막 섞어서 극단한 비대칭과 부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이런 그림이 명작이 되었습니다.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전에는 올림픽에 나가서도 금메달을 따야만 했습니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쳐주지도 않았습니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들도 감격해서 울기보다는 실패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동메달만 따도 박수를 칩니다. 선수 자신도 너무 좋아합니다.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문화적 기후가 그만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정신사적 흐름이 우리를 지대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무엇입니까? 포스트모더니즘과 어떤 관계입니까? 종교다원주의는 종교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대세 앞에 종교가 응답한 결과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무엇을 주장합니까? 절대 종교란 없다는 겁니다. 기독교를 인정하지만 지상에 있는 다양한 종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메시아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 지상의 종교에는 다 메시아가 있다는 겁니다. 불교에는 석가, 유교에는 공자, 이슬람에는 모하멧이 그 종교의 그리스도라는 얘깁니다. 기독교는 절대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구주라고 주장했는데, 그렇지 않고 다른 종교도 다 인정하며 상생하자는 겁니다. 이게 종교다원주의의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개종을 위한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들 최전방에는 가톨릭이 나서있고, 거기에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동조하고 나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 신학자들 중 많은 사람이 종교다원주의 전도사 수준입니다. 기독교 복음도 세계 여러 종교의 진리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가 상대화인데, 기독교의 진리가 상대화된 겁니다. 기독교의 절대주의, 배타주의를 상대주의로 끌어내리면서 종교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횡으로 정렬해서 세운 겁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기독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라는 게 중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게 중심을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주장합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이 신이라고 한다면, 그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다양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 불교 같으면 석가를 통한 길, 이슬람 같으면 모하멧을 통한 길을 인정하는 겁니다. 신은 한 분이나 그 신에게 도달하는 길은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게 종교다원주의입니다. 그래서 세계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한 신을 섬기기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루트만 주장하면 안 된다며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옮겨가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의 신념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호소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쪽으로 넘어가고 싶으십니까? 문제는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잘난 체 하는 학자들은 그렇게 얘기할지 몰라도, 그건 그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신앙의 절대적 규범은 성경인데, 그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리스도인에겐 예수, 불교인들에게는 석가 등으로 지정하신 일이 없다는 겁니다.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이름을 전하거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적인 분위기와 최근에 와서 유난히 극성을 떠는 이단들의 발호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요즘 이단들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전에는 음성적이고 수면 아래에서 움직였다면, 요즘은 드러내놓고 포교합니다. 교회 앞에 와서도 포교하고, 아예 교회 전체를 접수하기도 합니다.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려고 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오늘날 시대정신에 고무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문화적 풍토는 이단들과 사이비들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칩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이 예고하신 말세적 현상입니다. 마태복음 24장 23절 이하입니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주님의 이 당부를 기억하십시다. 어떤 위협에도 시류에도 휘둘리지 않는 성도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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