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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년경, 스위스 제네바에는 &lt;칼빈&gt;이라는 개 이름이 참많았다고 합니다. 공원이나 거리에서 누가 &lt;칼빈!&gt;하고 부르면 온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들 정도로 많았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그 자유분방하고 도덕적으로 문화적으로 몹시 개방적이던 제네바시에 존 칼빈이라는 종교개혁가가 부임하면서 갑자기 호랑이를 잡기 시작한 때문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lt;교회헌장&gt;이라는 엄격한 생활 규율을 만들어 시민들의 군기를 잡기 시작했는데 특히 게으르고 나태한 여성들에게는 가혹한 법이었다고 합니다. <br>심지어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여성들의 치마길이를 재기도 했고, 호수가 많은 제네바에서 겨울이면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스케이팅도 단속했다고 합니다. 하체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며 다리를 내뻗는 여성들의 스케이팅 모습이 남자들을 유혹에 빠지게 한다는 겁니다. 이에 여성들이 즉각 반격에 나섰는데 칼빈에게 모욕을 주기위해 그들이 키우는 모든 개의 이름을 칼빈으로 고쳐 부르기로 한겁니다. 하기야 후에 나온 영국의 청교도들이 바로 칼빈주의자들이었으니 칼빈이 치리하던 신정시대 제네바의 엄격함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br><br>오늘이 바로 루터와 칼빈등이 주도한 종교개혁 491주기가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또 마침 내년이 존 칼빈의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세계 주요교단들과 신학계가 벌써부터 그의 생애와 신앙과 신학사상, 개혁사상등을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대회와 기념행사등을 준비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학술단체들의 심포지엄은 물론 내년 9월로 예정된 우리교단 제 94회 총회도 &lt;칼빈탄생 500주년기념총회&gt;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세련…!).<br>스위스 제네바의 개혁가인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교외 노용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부친의 뜻을따라 사제의 길을 준비했는데 12세 때 이미 성당미사의 보조역을 맡았고, 14세때는 성당의 장학금으로 파리 마르셰대학에 입학하여 라틴어등 고전어와 성경, 문학등을 배웠으며 1528년에는 다시 몽테귀 대학으로 옮겨 더욱 엄격한 사제수업과 문학, 신학을 공부하여 문학사 학위를 얻습니다. <br><br>그러나 18세가 된 그에게 갑자기 아버지의 요구가 달라졌습니다. 신학을 접고 법학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칼빈은 오르레앙 대학으로가 법학을 시작하여 1532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런데 그 해 부친이 사망하자 칼빈은 다시 파리 왕립대학으로 옮겨 전에하던 고전어와 씨름하며 신학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 칼빈은 전격 개신교로 개종하고 종교개혁운동에 가세하는데 시편주석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이 개종사건을 &lt;뜻밖의 회심&gt;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br><br>프랑스 사람인 그가 스위스 제네바의 개혁가가 된 것은 1533년 11월 그의 친구인 니콜라스 콥이 파리대학 총장에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문 때문이었는데 루터의 개혁사상을 지지하는 그 연설문 초고를 칼빈이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콥과 칼빈은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심한 박해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콥은 바젤로, 칼빈은 파리 서남부의 앙그렘으로 피신했는데 칼빈은 그곳에서 저 유명한 &lt;기독교 강요&gt;저술에 착수했습니다. 1535년 칼빈은 스위스 바젤로 가서 친구 콥을 만났고 거기서 기독교강요를 탈고하여 1536년 3월 그 바젤에서 기독교강요 라틴어본 초판을 출간했습니다. 칼빈은 다시 제네바를 거쳐 슈트라스부르그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경유지인 제네바에 도착하자 당시 제네바 개혁운동의 선봉이었던 윌리엄 화렐이 찾아와 제네바에 머물러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는데 이게 바로 그가 제네바 개혁가가 된 동기였습니다. 그는 제네바를 그야말로 &lt;하나님의 도성&gt;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모든 체제를 개혁하는 소위 &lt;신정&gt;에 착수한 겁니다. <br><br>저는 지금 이 지구촌에 닥친 경제위기야 말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근간이 된 칼빈주의의 청교도적인 근검사상과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의식에 투철했던 직업의식과 철저했던 경제윤리관념의 붕괴에서 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칼빈주의자들인 청교도가 세운 나라 미국이 흔들리고, 또 미국이라는 가장 막강한 후견인이 흔들리면서 자본주의자체에도 근본적인 위기가 왔다고 봅니다. <br>오늘 새삼 칼빈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