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5n 1박 2일(눅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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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5n
눅 9:28-36
1박 2일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이어지는 37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그러니까 주님과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1박 2일 동안 신앙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받은 훈련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제자들은 거기서 기도훈련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변화산에 오르신 것은 머리 식히러 오르신 게 아닙니다. 28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당시 변화산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산이었습니다. 주님은 무엇보다 기도를 가르치고 훈련시키기 위해 제자들과 변화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이 기도하시기 위해 자주 산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산 아래서만 사는데 가끔은 주님과 제자들처럼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에서 거칠어진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탁해진 믿음이 정제됩니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용모가 변했다고 합니다. 얼굴이 변하고 모습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그냥 변화되신 게 아닙니다. 29절을 보면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면 누구나 용모가 변합니다. 늘 그늘져 있던 사람도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자기는 몰라도 다른 사람은 압니다. 모세도 시내 산에 올라가서 40일간 기도하고 내려왔는데 그 얼굴에서 너무 빛이 나서 백성들이 모세를 쳐다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모세가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겠습니까?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면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우리가 발광체는 아니나 하나님이 발광체이기에 그 빛을 받은 우리는 반사합니다. 천사들이 빛나는 이유는 늘 하나님 가까이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하나님을 뵙고 기도하는 분의 얼굴은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름이 사람들에게는 휴가의 계절이나 우리에게는 훈련의 계절입니다. 여름에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다음주 14-15일에 우리도 훈련하러 갑니다. 주님의 용모가 변했듯이 여러분의 용모도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신령한 은혜, 체험을 했습니다. 29절 이하입니다.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제자들은 구약의 전설적인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도 만났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이들은 구약의 두 기둥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출현한 것입니다. 주님과 3자 회담을 한 겁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들리는 하나님의 육성도 듣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베드로가 거기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신비로웠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이 말은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거기에서 살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도 신비체험이 가끔은 필요합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제안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신비체험이 필요함을 알기에 그 현장에 제자들을 있게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신비체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확신을 갖게 합니다. 우리의 약점은 신비체험을 하고 나면 베드로처럼 하산을 안 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우리는 간판을 겁니다. 변화산 기도원식으로 말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요구를 허용치 않으십니다.
본문 36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그때 본 것, 체험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마태복음 17장 9절에 보면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고 예수님이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적이나 신비체험이 개인에게는 덕이 되나 항상 남이나 교회에도 덕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신비체험의 기회도 마련해 주셨지만 그 신비체험 속에 너무 오래 머물거나 그것을 광고하는 일은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신비체험도 1박 2일로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산을 내려온 이후에도 신문광고에 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끔씩은 변화산에 올라 내밀한 신비체험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되고 필요합니다. 이번에도 함께 수련회에 가서 황홀경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체험을 하고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변화산 체험은 제자들에게 말씀훈련을 의미했습니다. 35절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모세가 위대하다 해서, 엘리야가 위대하다 해서 그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생한 육성입니다. 그래서 변화산이야말로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율법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신 복음만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복음만 들으라고 하셨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 됩니다. 세상 얘기도 들어야 하고, 코메디도 해야 합니다. 실컷 웃어놓고는 은혜 받았다고 해야 합니다. 하여간 요즘은 주님 말씀만으로는 안 됩니다. 지겹거나 졸립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소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잡고 웃어놓고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만 들으라고 합니다
변화산은 말씀의 특별한 체험과 훈련의 장소입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 요란하고 잡음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변화산에 올라가면 다릅니다. 이사야 56장 7절입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올해 전교인 여름수련회가 그야말로 변화산의 제자들의 체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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