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찌(욥 2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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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4
사람이 어찌
욥 22:1-11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세 번째 공박입니다. 인과 응보론의 잘못을 항변한 욥의 주장에 대해 엘리바스는 여전히 그런 논리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하며 거듭 욥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거룩하고도 초월적인 성품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야말로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기에 욥과 같은 죄인에게는 무관심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결코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는 없다고 역설합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1절).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되랴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2절).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결코 그런 존재가 못 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에게 유익할 뿐입니다>(잠 9:12). 지혜는 성공에 유익하고(전 10:10),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딤전 1:80). 신앙으로 인한 유익은 훗날 손익을 정산하는 날에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는 결코 유익이 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완전하셔서 불완전한 인간의 것은 그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촛불 하나를 켠들 그게 태양에 무슨 도움이 되겠으며 물 한 방울을 보탠들 그게 바다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 없이도 얼마든지 사시고 영원히 영광스런 분으로 남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 겸손해야 옳고 교만해서는 절대 안되는 존재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5절).
이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고 우리의 죄악은 크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 끝없이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도 진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우리는 죄가 없거나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아니라 죄 용서함을 받은 의인일 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더 이상 죄를 안 짓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지은 죄, 지을 죄에 대해 사함받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를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지 못함에도 의롭다고 칭해 주는 것이지, 의로운 존재여서 의인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인됨은 자랑이 아니라 그저 감사해야 옳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홍수가 너를 덮으리라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11절).
사회적 약자인 <과부를 돌아보지 않고, 고아를 멸시하고 착취하는 자들은>(9절)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을 대신해 보복하십니다. <올무와 두려움>(10절)으로, <어둠과 홍수>(11절)로 갚아 주십니다. 과부를 구제하지 않은 만큼, 고아를 착취한 만큼 내게 유익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헌금에 인색한 만큼, 주일을 범한 만큼 내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인간적 셈법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올무나 두려움, 어두움, 홍수 등으로 과부의 것과 고아의 것, 하나님의 것을 회수해 가십니다. 그 모든 게 결코 내게 이익이 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기적인 삶이 가장 치명적입니다. 믿는 자의 참된 삶의 본질은 주님처럼 이타적인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