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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나를 용납하라(욥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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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207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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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나를 용납하라</p>
<!-- paragraph:p0003 -->
<p class="p1">욥 21:1-8</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현실로 말하면 악인들도 얼마든지 번영을 누리며 삽니다. 세속적인 복으로 말하면 의인들보다도 악인들이 더 많은 것들을 향유하며 삽니다. 그럼에도 욥의 친구들은 죄인들이야말로 항상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며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논리로 욥을 공격하고 정죄했습니다. 물론 원리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항상 그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 21장을 통해 그 점을 강변하며 친구들을 향해 반론을 펴는 자기를 용납하라고 합니다. &lt;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gt;(3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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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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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나의 원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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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나의 원망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 마음이 어찌 조급하지 아니하겠느냐&gt;(4절).</p>
<!-- paragraph:p0009 -->
<p class="p1">그렇습니다. 욥의 원망과 조급한 호소는 결코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향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lt;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니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gt;(시 13:1)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듯 탄원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낙담할 때는 하루가 얼마나 길게만 느껴집니까? 언제까지 이 고통이 지속될 것인가 하며 얼마나 두렵습니까? 실제 이렇게 말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lt;가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럼 안 되는 거죠?&gt;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도 한 때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쓴 적이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십시오. 그러나 절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놓치지는 마십시오. 세상이 다 나를 버린다 해도 하나님 만큼은 절대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믿음 만큼은 꼭 붙잡으십시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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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나의 두려움</p>
<!-- paragraph:p0012 -->
<p class="p1">&lt;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gt;(6절).</p>
<!-- paragraph:p0013 -->
<p class="p1">최근에 부쩍 많이 보도되는 정신질환 가운데 &lt;공황장애&gt;라는 게 있습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정신장애를 뜻합니다. 환자들은 불안과 호흡곤란, 어지러움, 파멸감, 죽음의 공포 등을 호소하며 완전히 평정심을 잃는 무서운 병입니다. 욥도 지금 바로 그런 최악의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하고 있습니다. 공황발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일 또는 수개월 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더구나 우울증 같은 합병증도 나타나 치료 또한 쉽지 않다는 데서 당시 그런 병증을 겪은 욥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을지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나의 의문</p>
<!-- paragraph:p0016 -->
<p class="p1">&lt;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gt;(7절).</p>
<!-- paragraph:p0017 -->
<p class="p1">욥은 악인의 형통이야 말로 기정사실이라고 합니다. 날마다 눈으로 직접 보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을 응징하시는 하나님께 맞아 급살하기는 커녕 잘만 살아가고 있고, 하늘을 향해 온갖 욕설과 저주를 다 퍼붓는 악한도 버젓이 활개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손을 뻗어 하나님을 대적한 자 조차도 잘 살아 갈 뿐 아니라 형통하기까지 하다고 합니다(삼상 25:6). 악인들은 다 망한다는 친구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게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인데 이것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옳으냐는 게 욥이 계속적으로 던지고 있는 의문입니다. 욥의 한계는 역시 근시안에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눈앞의 현실과 현세적인 것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각은 먼 곳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긴 안목으로 이 세상을 너머 저 세상까지도 조망하는 것입니다. 영적이고도 신앙적인 세계까지 바라보며 현세와 눈앞의 현실을 상대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고통과 시련보다는 미래에 있을 상급과 보상을 바라볼 때만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인생의 모든 모순과 의문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