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2n 상을 위하여(빌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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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2n
빌 3:12-14
상을 위하여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의 선교지는 헬라문화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을 보면 운동, 특히 달음질에 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헬라문화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고대 올림픽의 영향입니다. 헬라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다보니 역시 그들이 열광하는 달음질을 화두로 복음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깁니다. 요즘 야구나 축구에 열광하듯이 그때는 올림픽, 특히 달음질에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그래서 달음질을 화제로 복음을 자주 설명했던 겁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을 경주자로 묘사한 본문을 근거로 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옳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얽매이기 쉬운 짐을 벗으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고대 올림픽은 주전 776년에 시작해서 주후 393년까지 약 1,200년간 계속되었습니다. 고대 올림픽 때도 이미 1,200년 동안 4년에 한 번씩 개최한 것입니다. 고대 올림픽의 특징 중 하나는 출전하는 선수들이 벌거벗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이게 1,200년간의 고대 올림픽의 전통입니다. 그 이유로 여러 설이 있습니다. 해방과 자유정신을 위해, 여자들의 출전을 막기 위해서 라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벗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완전 나체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운동하는 사람은 최대한 벗어야 합니다. 팬티 하나만 남기고 다 벗어야 합니다. 요즘은 신발도 최첨단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의 스파이크는 수 억 간다고 합니다. 어쨌든 가볍도록 신소재로 만들어서 신고 뛰어야 좋은 기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적 달음질, 믿음의 경주도 원리가 똑 같습니다. 벗어야 합니다. 거의 나체 수준으로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래서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모든 짐을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고대 헬라인들, 로마인들, 유대인들의 복장을 아시지요. 지금 중동지방 사람들처럼 통치마였습니다. 달음질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반드시 벗어야만 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얽매이기 쉬운 모든 것을 벗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복식문화를 볼 때 지당한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 경주자들입니다. 우리도 벗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인 빌립보서 3장 5절 이하를 보면, 바울은 자기의 그 화려한 과거와 이력과 혈통마저도 다 해롭다며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게 아무리 값진 것일지라도 나의 달음질에 방해되면 가차 없다는 것입니다. 분토처럼 버리는 게 옳다고 합니다. 그렇게 단호하지 않고 어떻게 내 앞에 당한 경주에서 승리하길 바랄 수 있겠습니까? 고대 올림픽 때는 1,200년간 발가벗고 뛰었다고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나를 방해하는 모든 짐을 벗어야 합니다.
다음은 푯대를 향해 뛰라고 합니다. 본문 12절 하반절입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4절도 보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게 바로 달음질하는 바울의 목표의식입니다.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합니까? 히브리서 12장 1절 이하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렇지 않습니까? 목표가 없이 푯대도 없이 반환점도 모른 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9장 26절입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믿는 사람들을 육상선수와 권투선수에 비유한 말입니다. 육상선수가 쉼 없이 뛰고, 권투선수가 정확히 상대를 가격해야 하듯이 허공을 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타겟으로 정확히 뛰고 쳐야지 딴전을 피우면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은 42.195km인데 반환점도 모르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6장 12절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영생입니다. 주님이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이하입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는 바울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목표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신앙생활하는지 잘 모릅니다. 왜 믿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왜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금하는지를 모릅니다. 실제 많은 분들이 영생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뛰고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향해 지금도 질주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들을 향해 한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입니다.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세상이 주는 면류관은 썩을 면류관이고,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이 진짜입니다. 이것을 목표로 달려야 합니다. 세상 유혹에 눈길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다 함정이고 다 내 발목을 잡는 것들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우리는 완전히 얻은 게 아니고, 우리는 아직 성취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도상의 존재입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그 구원이 완성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구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과 아직도 아닌 구원이 있습니다. 완성을 향해 우리는 부지런히 뛰어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푯대를 놓치지 마십시오.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해, 영생을 향해, 부르심의 상을 향해 쉼 없이 달음박질 하십시오.
그리고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래야 상을 얻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입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고린도전서 9장 25절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또한 고린도전서 9장 27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단어는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을 뜻합니다. 달음질하는 사람은 남과의 싸움 이전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냉혹한 자기관리 없이는 절대 기록을 내지 못하고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6장 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거기서 말하는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도 뜻하지만 또한 자기와의 싸움도 뜻합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자기 관리에 실패하면 그것으로 선수 생명이 끝납니다. 운동선수들은 마치 수도사처럼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부 하려는 마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한결같은 소망이 부자요 돈인데, 달음질하려면 그것마저도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다 시험과 올무가 되어 나를 실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달음질 선수들입니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없고, 자고 싶다고 다 잘 수 없고, 놀고 싶다고 다 놀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자기 몸을 쳐야 합니다. 그러한 눈물겨운 자기와의 싸움, 자기 통제, 자기 단속 없이는 영적 경주에서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얼마나 자기 관리에 냉혹한가가 중도탈락이냐 완주냐를 결정합니다. 부디 자기와의 싸움에 더욱 치열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바울처럼 승리의 면류관, 영광의 월계관을 얻는 최후의 승리자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PFnRLmFdK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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