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종교와 예술과 자유의 성지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등장하는 구 동독의 작은 파리 <라이프치히>는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약 180km 정도 떨어진 유수한 중세풍의 도시입니다. 라이프치히를 상징하는 <성 토마스> 교회는 16세기 초 마르틴 루터가 종신서원을 한 곳이고, 1520년에는 가톨릭 신학자 요한 에크와 신학적 논쟁을 벌인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가하면 라이프치히는 바그너의 고향이자 바흐와 멘델스존의 주 활동무대였던 음악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바흐는 이곳에서 1724년부터 1750년까지 8백년 전통의 소년 소프라노 성가대인 성 토마스 합창단을 지휘했는데 이 소년 합창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합창단으로 수난곡, 오라토리오, 칸타타, 모테트 등 바흐 합창음악의 명곡들이 대부분 이 합창단에 의해 초연되었으며 지금도 이들의 중심 레퍼토리는 다 바흐의 곡들입니다. 바흐는 27년간 성 토마스 교회의 성가대와 합창단을 중심으로 의회 등 도시 전체의 음악감독을 겸하며 라이프치히 예술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후에 바흐의 유해는 성 토마스 교회 안에 안치되었으며, 1840년에는 멘델스존에 의해 바흐의 동상이 제작되어 성 토마스 교회 앞에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결혼행진곡으로 익숙한 <한 여름 밤의 꿈>의 작곡가 멘델스존은 역사 속에 묻혀가던 바흐 음악을 새롭게 부활시킨 주인공입니다. 그는 원래 함부르크 태생이지만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취임하면서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하고 쇼팽, 슈만 등과 활동하다 1847년 38세를 일기로 라이프치히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예술가입니다. 그의 생가인 <멘델스존 하우스>에서는 지금도 매 주일마다 음악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라이프치히에는 성 토마스 교회 외에도 유명한 성 니콜라이 교회가 있습니다. 분단 시절이었던 지난 1980년대 초 그 교회에서는 동독 공산정권에 저항하여 평화와 통일을 위한 작은 규모의 <월요기도회>가 시작됐습니다. 매주 빠짐없이 계속된 그 월요기도회는 점점 커져 80년대 후반에 이르자 자유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적인 행진까지 벌이는 대규모 군중집회로 발전합니다. 1989년 마침내 촛불기도회 운집 인원이 1백만을 넘으면서 그들의 거리 행진이 통일을 향한 독일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고 그게 결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지난 40년간의 분단의 장막을 거짓말처럼 허문 통독의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라이프치히는 분단 독일의 통일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도시입니다. 


199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그림은 독일의 현대미술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오르그 바젤리츠, 안젤름 키퍼 외에도 그동안 분단으로 인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구 동독 미술계의 봉인이 풀리면서 네오 라우흐가 이끄는 소위 <라이프치히 화파>의 작품들을 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줄곧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학습해 온 그들은 강요된 이념과 선전적 사실주의 외에도 자기들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두려움과 억압된 욕망을 드러내는가 하면 또 동시에 무력함도 함께 표현하고 있어서 권태에 빠진 뉴욕과 유럽 미술계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 넣으며 극도로 침체된 세계 미술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지금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본관에서 바로 이 라이프치히 화파 컬렉션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림뿐 아니라 사진과 설치 작품까지도 선보이며 그동안 말로만 듣던 라이프치히 화파의 면모를 보다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 것입니다. 라이프치히 화파는 모두가 라이프치히 대학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대학은 1409년 교황 알렉산드르 5세의 교서를 받은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설립된 대학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다음으로 역사가 깊은 대학이기도 합니다. 이 대학은 특히 예술 쪽으로 명성이 높은데 단자론으로 유명한 라이프니츠와 괴테, 니체를 비롯해 극작가인 레싱, 작곡가인 슈만과 바그너,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대학입니다. 음산하고도 창백한 색조와 단조롭고도 쿨한 구도의 라이프치히 화파의 그림들이 이 후텁지근한 장마철 무더위를 날려버리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독일 통일 이후 이제는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에게 뭔가 남다른 메시지를 던질 것도 같아 관람을 권합니다. 한 번 다녀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