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나의 친구야(욥 19:20-29)

20120719

나의 친구야

욥 19:20-29


욥은 지금 가죽과 뼈만 남아 거의 해골과 같은 몰골을 하고 있습니다. 피부 조차도 다 갈라지고 벗겨져 겨우 잇몸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의 온 몸을 뒤덮은 종기와 악성 부스럼이 피부와 외모까지도 완전히 망가뜨린 것입니다. 욥이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언어로 그의 친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21절).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친구에게,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자라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힘들 수는 있겠지만 수습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치셨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치신 아픔이나 상처는 하나님 개입없이는 결코 회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의 친구들의 정죄는 극구 부정했지만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의 출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 만큼은 깊이 인정했습니다. 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자기를 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실은 그래서 더 서럽고, 더 외롭고, 더 절망적인 감정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아프고 고독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속자가 살아 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25절).

이것은 욥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심지어 그는 이 진술을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겼으면 좋겠다>(23-24절)고까지 합니다. 이것은 욥의 신앙 속에 자리한 대속자에 대한 깊은 신념입니다. 따라서 그는 때로 심하게 흔들릴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해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26절)고 합니다. 대속자가 계시므로 내게도 그런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욥이 확신하고 고백한 대속자는 그가 예언한  그대로 이 땅에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대속의 은총을 누리게 하셔서 믿음으로 의인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디 그 최악의 고난 중에도 책에 기록하기를 바란다며 예언한 욥의 대속자의 은총이 오늘 당신에게도 넘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심판장이 있는 줄 알라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27절).

욥이 친구들에게 또 한 번의 결정적인 일갈을 날립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칼, 즉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하나님의 공의의 칼을 두려워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심판장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자요 심판자시라는 주장은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계 1:8).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7). 기억하십시오. 종말이란 단순한 역사의 종지부가 아닙니다. 그간의 삶의 과정과 내용을 결산하는 철저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고 준비하고 근신하므로 맞아야 할 최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