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말뚝 테러

기가 차서 말문이 다 막힐 지경입니다. 지난 달 19일 아침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47세)란 자가 한국 주재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 옆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말뚝을 세우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그 도발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다 올렸습니다. 그는 또 그 테러에 사용한 말뚝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 개당 3천엔(4만 3천원), 2개 이상을 주문하면 개당 2천 5백엔에 할인해 준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매춘부 상에 잘 어울린다>는 모욕적인 파키까지도 잊지 않았습니다. 스즈키는 자신의 그 국제 말뚝 테러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자 한껏 고무되어 며칠 전에는 다시 추가 도발을 예고했습니다. 말뚝 4개를 가진 남성 4명이 이미 한국으로 출국했다며 말뚝과 여권을 들고  공항에서 찍은 인증사진까지도 공개했습니다. 또한 한국정부의 자신의 입국금지 조치를 비웃으며 지인들을 통해 앞으로도 얼마든지 말뚝 테러를 계속할 수 있다고 공언했습니다. 36년간이나 무자비하게 짓밟고 유린해 온 피해민족의 상처에 또 다시 소금을 뿌리는 저 개념 없는 일본인의 멘탈에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서울에서 일본인 스즈키가 그렇게 위안부 소녀상과 독도에 말뚝 테러를 가하던 바로 그 날, <유로 2012>가 열리던 폴란드에서는 8강전을 앞둔 독일 축구대표팀이 나치가 유대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아우쉬비츠>를 찾아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했습니다. 사실 빠듯한 경기 일정에 쫓기며 팽팽한 긴장 속에 있는 운동선수들이 굳이 그곳을 찾아야 할 도덕적인 의무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 국민들은 과거의 침략전쟁과 유대인 학살범죄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반성하며 사죄를 비는 진정성을 보입니다. 1970년 12월 9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었던 모습은 전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독일은 나치의 범죄를 부인하거나 옹호하거나 미화, 찬양하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습니다. 각급 학교에서는  과거사 교육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나치의 범죄를 가르치고 있고, 폴란드의 아우쉬비츠와 독일 뮌헨 근교의 다카우 수용소는 치욕의 현장으로 보존하며 후손들의 산교육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과 똑같은 2차대전 전범국인 일본은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어떻게든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만행을 합리화하고 미화하고 부인하기에 바쁘고, 총리란 사람은 일급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찾아가 참배하며 주변 피해국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철거하기 위해 온갖 외교공세를 다 펴고 있습니다. 구약 사사기 19장에는 밤새도록 기브아의 불량배들에게 윤간 당한 후 겨우 집 앞까지 기어와 죽은 어느 레위인의 첩 얘기가 나옵니다. 사실 레위인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첩을 대신 희생시켰던 것인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운명도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이 짓밟힘으로써 여염집 아낙들의 안전이 담보됐던 것인데, 대신 정신대란 이름으로 징발당한 위안부 소녀들은 하루에 30명, 40명, 50명 오끼나와에서는 하루 100명까지도 일본군을 상대하다 부지기수로 죽어갔고, 일부 병든 조선인 위안부들은 할빈에 있는 <731부대>로 보내져 생체실험용으로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그 조선인 소녀들을 매춘부로 모욕하며 지금도 그 한맺힌 가슴에 반인륜적인 말뚝을 박고 있습니다. 이 달 28일에는 분쿄 구민센터에서 그간의 말뚝 테러에 대한 보고대회까지 갖는다니 스즈키의 저 파렴치한 만행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요.


그러나 혹 서울 시내에서 말뚝 테러 일본인을 보시더라도 직접 응징하지는 마십시오. 자칫 트럭을 타고 일본대사관으로 돌진한 어느 시민처럼 구속되거나 <동물보호협회>로부터 고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테러를 위해 입국하신 분들이라 해도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므로 그냥 112나 111(국정원)에 신고만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