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어도(욥 1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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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3
부르짖어도
욥 19:7-12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6절).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며 겪는 가장 큰 답답함은 나의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며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경우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다>(시 28:1)고 했습니다. 욥도 지금 자기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며 하나님의 응답하시지 않음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내 앞에 어둠을 두셨도다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8절).
그렇습니다. 부르짖고 간구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황은 그야말로 어두움입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욥의 경우 하나님이 그런 상황을 연출하고 계시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금 <내 길을 가로막고 계시고 내 앞에 어둠을 두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흔히 연단과 인내와 깨달음을 위해 우리가 부르짖어도 당장 응답하시는 대신 오래 참으십니다. 다윗도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고 했습니다. 또 시 130편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다>(6절)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고, 조금만 더 참으시고, 조금만 더 간구하십시오. 나의 시간표와 주님의 시간표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 영광을 거두어 가셨도다
<나의 영광을 거두어 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9절).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서 명예와 지위와 물질을 앗아가시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데려 가실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몹시 불행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아픔이 내게 꼭 필요하기에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혹독한 시련을 통해 나를 더욱 정제하시고 정련하십니다. 담금질이란 실로 가혹한 연단입니다. 용광로와 찬물을 오가며 계속 망치질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픈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질 좋은 쇠로 거듭나며 쓸모 있는 연장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금이나 은도 풀무불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순도 높은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풀무불은 모든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순수한 금만 남게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순금으로 만드시기 위해 때로 모진 담금질과 혹독한 풀무불 시련을 겪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많은 것을 잃게도 하시고, 때로는 영광과 명예를 버리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나를 정금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기억하십시오. 욥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42:10).
내 희망을 뽑으셨도다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10절).
당시 욥으로서는 실제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면초가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작가인 영국의 찰스 디킨스는 소년시절이 참 불우했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행인들의 구두를 닦는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일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신기해서 <구두 닦는 일이 그렇게도 즐겁니?>하고 물으면 그는 <저는 지금 구두를 닦는 게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거든요!>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희망을 닦게 하시려고 모진 좌절과 절망을 겪게 하신 겁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에 결코 포기하거나 체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