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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20708m 알파와 오메가(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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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20708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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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계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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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알파와 오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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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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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은 역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 얘기가 왜 필요할까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그 사람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이해나 신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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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역사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주제는 주체 문제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누구냐는 문제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인간입니까?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인간의 의지대로, 인간의 자기 능력으로 오늘 역사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습니까? 앞으로도 인간이 역사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리라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우리 신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진정한 주체시라 고백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시간과 함께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태초가 시간의 기원입니다. 역사의 시원입니다. 그 태초부터 시간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태초부터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 안에 계셨는데, 이 우주를 창조하시며 필요에 의해 시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출발시킨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시점이 바로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in the beginning, Am Anfang)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시간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시간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창조하신 시간 안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그래서 역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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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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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 본문은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가 하나님에 관해 진술한 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고백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무슨 뜻입니까? 헬라어 알파벳의 첫 자가 알파이고, 마지막 글자가 오메가입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요, 창조와 종말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역사를 창조한 존재이고, 마지막으로 역사를 심판할 자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시간과 역사의 진정한 주체라는 사실을 아주 명쾌하게 밝히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창조자요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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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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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흔히 인류사, 정신사, 실존사니 하면서 오직 인간 중심의 역사만을 얘기합니다. 인간을 역사라는 무대의 주연으로 세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주연배우도 감독의 연출에 따라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대사상, 특히 실존주의는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아주 강하게 주장하면서 오로지 인간 중심의 세계관, 가치관을 가르칩니다. 인간이 이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어림도 없는 얘깁니다. 역사는 인간의 의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역사는 요리됩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신학자 중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 Pannenberg)는 역사로서의 계시(Offenbarung als Geschichte)라는 말을 썼습니다. 역사가 시간이 곧 하나님의 계시라는 겁니다. 역사가 하나님 계시의 가장 보편적인 장이라는 주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역사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피상적으로 현상적으로만 봅니다. 그 사건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봐야 합니다. 이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면 역사가 하나님 계시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때 그 때 필요한 당신의 뜻을 역사에 계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다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 깃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lt;때&gt;에 대한 분별입니다. 우리가 둔감해서 그렇지 우리의 영성이 무뎌서 그렇지 모든 역사적 사건은 반드시 그 시대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반 푼에 팔리는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얼마나 세심하고 치밀하고 철저한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절대 우연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역사의 모든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곧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맨홀에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다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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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누가복음 17장 26-30절입니다.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노아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방주를 지으면서 아무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외쳐도 사람들이 끝까지 믿지 않고 비웃었습니다.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롯이 아무리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해도 사위들까지도 장인을 비웃으며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먹고 마시고 집도 사고 장가가다가 유황불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주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인자의 때,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실 때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말을 외쳐도 하나님이 진정한 알파요 오메가라고 호소해도 사람들이 비웃으며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시집가고 장사하고 향락을 즐기다가 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처럼 다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앞으로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주 되심을 부정하며 비웃으며 자기 멋대로 자기 개성대로 살다가 결국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롯 시대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멸망할 것을 주님이 친히 예언하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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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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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역사 발전에 관한 문제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역사가 점점 더 발전하고 진화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역사적 낙관주의입니다. 역사가 점점 더 진보한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테제(명제)와 안티테제(반명제) 간에 긴장과 갈등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며 투쟁하게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신테제(합일, 종합)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헤겔의 사관입니다. 이것이 진보적 사관입니다. 물론 성경도 헤겔의 사관처럼 진보사관의 모습이 있습니다. 결국은 역사가 앞으로 전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으로 그려보면, 성경의 사관은 나선형입니다. 헤겔이 본래 신학도였습니다. 그래서 헤겔의 사관은 성경의 사관을 수용해서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대목에서 다른가 하면, 성경의 사관과 헤겔의 사관이 앞으로 나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성경의 사관은 절대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오히려 성경의 사관은 종말과 심판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성경의 사관은 위기적인 사관이지 낙관적인 사관이 아닙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긴장해 있어야 한다는 게 성경의 사관입니다. 역사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에 이르면 하나님이 그간의 과정과 내용을 엄정히 결산하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게 합니다. 기독교적 사관은 절대 진화론적이지 않고 종말론적 사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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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렇다면 이번에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심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우선 그들 삶의 특징은 철저히 물질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오로지 물질에 몰두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았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다고 합니까? 오직 물질적인 삶만 탐닉했습니다. 그런데 심판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그게 심판의 폭우인지도 모르고 죽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물질적 향락을 누리다가 하늘에서 불과 유항이 쏟아져 멸망했습니다. 우리 신자 가운데도 유난히 물질적 삶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신자이긴 하나 영적인 데는 관심이 없고 지나치게 물질 지향적으로 사는 겁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롯의 아내입니다. 롯의 처는 롯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해 구원의 성인 소알을 향해 열심히 뛰었는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음에도 한참 뛰다가 뒤를 돌아보자 그 순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사해(Dead Sea) 지역입니다. 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봤을까요? 지금 금은보화가 있는 성이 유황불에 타고 있습니다. 너무도 아까운 겁니다. 그래서 돌아봤습니다. 물질에 관심이 많은 신자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 롯의 아내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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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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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으로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내세를 부정합니다. 현세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안중에는 인간 중심의 현세만 있지 절대 영원한 내세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향락과 쾌락에 빠질까요? 다 현세가 전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쾌락주의, 향락주의는 명백히 현세주의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현세의 이익이나 육적 향락을 위해 내세를 팔아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세를 위해 현세의 고난을 견디고 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세가 전부이기에 그렇게 악착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아닙니다. 내세를 믿기에 현세에서 아득바득하지 않습니다. 내세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세를 막연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내 심장이 멎으면 내세는 나의 준엄한 현실이 됩니다. 내세는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누구도 큰소리치지 마십시오. 누구도 내세를 비웃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는 자들의 종말론적 삶의 자세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내게서 시간을 회수하시면 그 순간 현세가 곧 내세로 바뀝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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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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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부디 하나님이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 되심을 확신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종말과 심판을 진지하게 준비하며 사는 복된 성도들 되십시다.</p>
<!-- paragraph:p0024 -->
<p class="p1"><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a href="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B_67w3s1It4$">설교영상보기: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B_67w3s1It4$</a></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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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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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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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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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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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 paragraph:p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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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37 -->
<p><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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