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701m 맥추절 정신을 계승하라(출 23:16)

20120701m

출 23:16

맥추절 정신을 계승하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오순절, 칠칠절, 초실절은 모두 맥추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을 오순절이라 함은 유월절로부터 50일 되는 날에 지킨다 해서 오순절이고, 칠칠절은 유월절로부터 일곱 안식일이 지난 뒤에 지키는 절기라는 뜻이고, 초실절은 한 해 농사의 첫 열매인 보리를 수확하는 절기라는 의미입니다. 


보리농사를 짓지 않는 요즘 왜 맥추절을 지킵니까? 왜 교회는 여전히 맥추감사절을 포기하지 않고 지킬까요? 맥추감사헌금을 노려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고 보리농사가 사라졌다 해도 여전히 우리가 계승해야 할 맥추절의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3,500여년의 고색창연한 전통을 교회가 고수하는 이유는 맥추절의 정신 때문입니다. 


맥추절은 토지소산의 맏물, 짐승의 초태생을 바치는 절기입니다. 본문 상반절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출애굽기 34장 22절입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신명기 26장 10절입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왜 토지소산의 맏물, 짐승의 초태생을 드려야 합니까? 그게 무엇이든 맏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입도 당연히 첫 소득, 심지어 자식도 장자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날 첫 시간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 열매는 그 이후에 생산되는 열매를 대표합니다. 초태생은 그 이후 태어나는 모든 새끼를 대표합니다. 맏이는 모든 형제를 대표합니다. 한 주간의 첫 날인 주일은 그 주간의 모든 날들을 대표합니다. 바로 이러한 대표성과 상징성 때문에 그게 무엇이든 첫 번째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하여 바치게 함으로써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우리가 실천적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내 수입의 맏물인 십일조를 바친다는 것은 내 수입의 1/10을 바치는 게 아니라 10/10을 바치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도 한 주간의 첫 날만을 바치는 게 아니라 한 주간의 모든 날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이고, 모든 물질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해 밭농사의 첫 수확인 보리를 바치는 것은 그해 모든 밭작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장자를 통해 그 가문과 가계를 축복하십니다. 맏이가 모든 자식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훔친 사건도 바로 그런 이스라엘 전통의 장자 문화, 맏물사상을 배경으로 생겨난 에피소드입니다. 맏물, 초태생,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식과 그 실천이 맥추절의 기본 정신입니다. 이 전통을 잘 계승하십시다.


하나님께는 반드시 흠 없고 티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게 맥추절의 중요한 정신입니다. 레위기 23장을 보면 맥추절에 바치는 떡은 절대 누룩을 섞으면 안 됩니다. 무교병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누룩은 항상 부패를 상징하기에 누룩을 제하라는 것은 항상 흠 없고 순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누룩 대신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맥추절은 맏물뿐 아니라 반드시 무흠한 것, 정결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절대 거룩한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흠 있는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0절 이하입니다.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제물에 담긴 흠 없고 티 없는 우리의 중심을 받으십니다. 제물 그 자체에 무슨 미련이 있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 돈만 바치면 헌금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조건 수입의 1/10을 떼어 바치면 십일조가 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의 온전한 중심을 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피에 굶주린 신이 아닙니다. 흠과 티가 없어야 합니다. 순전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누룩 대신에 소금을 쳐야 받으십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제사장이 사전에 제물을 엄격히 검사했습니다. 흠과 티가 있으면 제물 부적합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는 그 제도가 어떻게 악용되었습니까? 외부에서 반입한 제물에 대해서는 무조건 제물 부적합 판정을 내립니다. 성전 뜰에서 제사장의 하수인들이 파는 값 비싼 짐승을 바치면 무조건 적합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성전 뜰에서 파는 비싼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다 몰아내신 겁니다. 주일 성수도 온전히 해야지 낮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십일조도 온전히 하셔야 합니다. 하여간 아직도 우리가 드리는 제물에는 흠과 티가 많습니다. 순도를 높여야 합니다. 


맥추절은 희생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 이하를 보면 제물 목록이 소개됩니다. 고운 가루에서 어린 양, 숫염소, 수소가 나오는데, 그 규모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항상 희생제물이라고 합니다. 제물과 희생이 언제나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얌체처럼 믿습니다. 수확은 많이 바라면서 희생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한 톨의 보리가 썩기를 거부하면 어떻게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당신의 맏물을 우리를 위해 희생하십니다. 우리에게 맏물을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 없이 예수 믿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교회만 찾아 전전합니다. 어디에도 희생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십일조도, 주일성수도 다 희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희생 없는 예배도 감사도 없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큰 희생입니다. 희생을 바쳐야 희생의 제물을 드려야 주님이 열납하십니다. 희생을 감수하십시오. 희생을 자원하십시오. 그게 바로 하나님이 흠향하시기에 합당한 맥추절 제사요 제물입니다. 


맥추절의 이러한 기본 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계승하십시다. 첫 열매, 초태생을 드리고, 흠 없고 티 없는 제물을 바치고, 희생을 바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다. 이것이 바로 남은 반 년 동안 더욱 큰 은혜를 수확하는 소중한 비결입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es3GeT8Li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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