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4m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눅 2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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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4m
눅 22:36-38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본문의 무대는 최후만찬장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찬식을 제정하시고 가룟유다가 당신을 배신할 것도 지적하십니다. 21절 이하입니다.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리고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사실도 예언하십니다. 33절 이하입니다.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엄숙한 자리에서 진지하고 심각한 시점에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주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이제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개인 재산목록 1호입니다. 겉옷은 겉옷만이 아니라 밤에는 이불입니다. 내일이 6.25입니다. 62돌입니다. 6.25 때 피난민들의 사진을 보면 다들 이불보따리를 메고 길을 나섰습니다. 피난행렬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이불보따리는 챙겼습니다. 길에서 노숙하든 헛간에 자든 밤에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6.25 때 굶어죽은 사람보다 동사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팔레스틴은 밤에는 영하로도 떨어지기에 반드시 겉옷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때로 손목시계나 반지 등을 전당 잡히고 돈을 융통하기도 했습니다만, 유대인 사회에도 그랬습니다. 가장 손쉬운 전당품이 겉옷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에 보면 업주가 사람들의 겉옷을 전당 잡았을 때 해가 지면 돌려주게 되어있습니다. 왜냐면 밤에는 겉옷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겉옷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게 개인의 겉옷인데, 주님은 그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들 곁에서 지켜줬지만 이제 내가 죽으니 너희들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탈레반이나 하마스, 헤즈볼라 같은 무력단체들처럼 무력으로 봉기해 외세인 로마에 대항하고 원수들을 물리치라는 얘깁니까?
이해하기 힘든 이런 당부를 하시고 나서 주님은 곧장 어디로 가십니까? 최후의 만찬을 마친 주님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네마네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다 체포되십니다. 그 장면을 요한복음에서 봅니다. 18장 3절 이하입니다.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이제 10절 이하를 봅니다.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 장면을 마태복음 26장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아니 금방 산 아래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는 칼이 없는 사람은 칼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합니다. 스승에 대한 충정으로 빼 든 칼을 도로 꽂으라고 하십니다.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칼을 사라는 것은 무엇이고, 도로 칼집에 꽂으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산 아래서는 칼을 사라 해놓고, 산 위에서는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것은 아예 칼을 갖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칼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칼 자체를 부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는 말씀, 칼을 꽂으라는 말씀은 주님이 칼의 존재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겉옷을 팔아 칼을 사되 칼을 뽑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칼에 피를 묻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고도의 역설이고, 주님의 변증법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칼집에서 칼을 뽑아 휘두르면 그 사람은 필히 칼로 망합니다. 원래 칼은 칼집에 들어있을 때만 칼입니다. 칼이 칼집에 뽑히면 흉기로 변합니다. 칼을 뽑아 남을 해친 사람은 절대 칼을 도로 꼽지 못합니다. 칼의 보복이 두려워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은 칼집에 있을 때에야 권위와 잘서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겉옷을 팔아 칼을 사되 칼을 절대 뽑지는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그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대목을 우리는 절대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평안할 때는 온갖 비단 같은 말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칼을 쓰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북한은 누가 뭐래도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이미 핵보유국이란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일본 의회가 지난주에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원자력 이용의 안전 확보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조항을 기본법에 삽입했습니다. 34년 만입니다.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실히 하였습니다. 법적으로 원자력 이용과 국가 안보를 연관 지은 것입니다. 이제 일본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4,8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핵무장은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에워싼 북한, 중국, 일본이 핵보유국이거나 잠재적 보유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북한이 우리를 핵 공격하면 말할 것도 없지만, 중국과 일본이 핵으로 싸우면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겼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 비장하게 당부하신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 상황의 해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속히 겉옷을 팔아 칼을 사는 것입니다. 칼을 사서 휘두르자는 게 아닙니다. 원수들의 귀를 쳐서 떨어뜨리자는 게 아닙니다. 칼을 사되 칼에 피를 묻히지 말자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도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게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며 하신 말씀입니다. 칼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칼은 꼭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칼을 갖되 절대 칼을 뽑지 않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평화주의자들이나 맹목적 평화주의자들은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주님도 대책 없는 무저항 비폭력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칼은 가지되 총은 들되 남을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집총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칼을 부인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칼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소중한 개인 재산인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고 하셨고, 원수가 빼 든 칼 앞에서도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평화주의입니다. 칼에 피를 묻혀서는 안 됩니다. 원래 강한 사람은 칼이 있어도 절대 칼을 뽑지 않습니다. 정말 강한 사람은 주먹을 잘 쓰지 않습니다.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겁니다. 그것은 칼에서 최후의 보장을 찾는 야비한 사람입니다.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은 주먹을 쓰지도, 칼을 뽑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지금이야말로 칼을 사야 하는 때입니다. 우방이라 해서 언제까지 우리가 그들의 선처만을 바라고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겉옷을 팔아 칼을 사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뜻을 모으는 데 우리가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하신 말씀과 그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p8s_rsRu3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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