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6월의 노래

62년 전 6월은 우리 역사에 피맺힌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우리 국민들이 애창하는 3대 가곡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 <비목> 가운데서 <가고파>를 뺀 2곡이 다 6.25를 소재로 한 노래입니다. 특히 <비목>은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어느 이름 없는 영혼을 달래는 애절한 노랫말과 우리 고유의 한 서린 멜로디가 어우러져 최고의 국민 가곡으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노랫말을 쓴 한명희(1938∼)는 서울대 음대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1964년 ROTC 초급장교로 최전방 비무장 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따스한 석양이 백암산 계곡을 붉게 물들이던 어느 날 오후 경계구역을 순찰하던 그가 잡초 우거진 양지바른 산비탈에서 이끼 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 합니다. 십자가 비목으로 보이는 썩은 나무 등걸과 그 옆에 나동그라진 녹슨 철모 그리고 홀로 그 곁을 지키고 선 새하얀 산목련을 보며 그는 그게 곧 어느 무명용사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돌무덤의 주인공도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목은 그렇게 미처 꽃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산화한 이 땅의 수많은 젊은 아들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헌시입니다. 한명희는 군 제대 후 동양방송(TBC) 라디오 음악담당 PD로 일하면서 1968년 자신의 가슴에 남아있던 그 이끼 낀 돌무덤의 잔상을 <비목>이라는 제목으로 작시하여, 작곡가 장일남(당시 한양대 음대 교수, 2006년 별세)에게 건넸는데 노랫말을 본 장일남이 큰 감동을 받아 즉석에서 떠오르는 악상을 오선지에 옮긴 것이 오늘의 명곡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60년도 더 된 세월이지만 포연의 추억 속에 산화한 2만이 넘는 무명용사들, 서로 다른 이념이 낳은 비극의 역사를 보며 통일과 평화란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가를 새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6.25 62돌을 맞아 다시 한 번 그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산하 어디엔가 버려져 있을 외로운 전사자들을 기억합시다. 그게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장에서 무덤이 오히려 사치였을 그 애달픈 영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알 길 없는 외국 참전용사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감사한 맘을 져버리지 맙시다. 그게 이국 땅에 쓸쓸히 버려진 그들 주검에 보내는 우리 산 자들의 최소한의 경의일 것입니다. 


산 첩첩 물 겹겹 / 양구 땅에 피는 꽃은 피보다 더 붉어 

산비탈엔 사시사철 꽃새가 우네 

 …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예사로 보진 말게 

그리고 잊지 말게 / 오늘의 자유엔 피가 묻어 있음을 

평화의 미소뒤엔 숭고한 희생의 눈물이 있었음을 

신화가 태어난 땅 양구를 지날 때 

피보다 더 붉은 꽃을 보거든 

영혼이 피었다 생각하게나 

바쁜 걸음 멈추고 잠시 

고개 속여 경의를 표해 주게나


(양구 땅에 피는 꽃은, 장승진).


감사합니다! 그대들이 있어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