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황폐함(요1 16:16-13)

2012. 6. 22.

황폐함

욥 16:6-13


현대인들은 대부분 정신적인 황폐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뭔가 일에 쫓기지 않으면 오히려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합니다. 한가한 오후 시간의 아늑함을 즐길만한 여유도 없고,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날까 싶으면 고의로 남을 무시하거나 해치며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삶의 황폐함 속에서 우리가 편히 쉴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이 황폐함을 다시 충만케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욥은 지금 극도의 황폐함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탄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7절).

욥의 하소연이 너무나도 비통합니다. 그는 주께서 자신을 피로하게 하시고 자기의 온 집안을 패망케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그게 무엇이든 인간사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게 비록 자신을 극도로 피곤하게 하고 또 자기 온 집안을 처참하게 하는 일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복음적인 이해에는 못 미쳤으며 오직 인과응보적인 율법적 사고에 붙잡혀 현재 당하고 있는 시련의 비밀에 대해 고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피곤하게 하시고 패망하게 하신 것은 분명한데 그게 무엇 때문이냐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8절).

욥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극심한 병 때문에 지금 그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주께서 그를 시들게 하셨다는 것은 주름이 부쩍 늘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온 몸을 뒤덮은 종기와 부스럼 때문에 그의 살은 파리하여 전에 보이지 않던 뼈까지 불거져 나왔습니다(33:21). 이런 그의 모습이 대적자들에게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증거요 그가 악인이라는 사실의 구체적 물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기느냐 지느냐의 관점에서 참과 거짓, 진리와 사이비를 구분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남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흥하면 참이고 진리이지만 지거나 병들고 망하면 거짓이요 비진리라는 것입니다. 실은 그래서 초대교회가 주님의 십자가를 변증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웠던 겁니다. 하기야 가장 무력하고 처참하게 죽으신 분이 어떻게 승리자며 인류의 구원자며, 그분의 말씀이 어떻게 복음인지를 변명하는 일이 어찌 쉬웠겠습니까? 지금 욥의 고민과 딜레마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 모든 불행과 재난의 진정한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로서는 설명하거나 해석할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악인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11절).

욥에게는 지금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 크게 분노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수한 인생들 가운데서 유독 <내 목을 잡아 부숴뜨리시며>(12절) 분풀이를 하고 계신 듯 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욥에게는 하나님이 몹시도 불공평하신 분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왜 자기 만을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12절) 무수한 화살을 쏘느냐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욥에게는 하나님이 너무 잔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타격하시려고 <콩팥을 꿰뚫었다>(13절)고 합니다. 이는 그가 당시 신장결석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이렇듯 아무리 경건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도 극심한 시련이나 환난에 처해지면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과오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십시오. 흥하고 복될 때 보다 오히려 망하고 힘들 때 고백하는 신앙이 더 값지고 그게 더 그 사람의 거짓 없는 진실일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