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좌절(욥 16:1-5)

2012. 6. 21.

좌절

욥 16:1-5


욥은 지금 아무런 정서적 지원이나 격려도 없이 오직 비난 속에 홀로 버려져 있습니다. 친구들과 아내가 다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에 대한 최대 비판자가 되었습니다. 욥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어 가며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를 가장 황폐하게 한 것은 역시 그의 친구라는 자들의 가혹함이었습니다. 욥기 16장은 더욱 깊어지는 좌절감 속에서 욥이 친구들에게 절규하듯 호소하고 이어서 하나님께 절절히 항변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2절).

욥이 친구들을 향해 너희들이야 말로 내게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일 뿐이라고 합니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욥이 그의 친구들에게 당하고 느낀 아픔이 얼마나 크고 치명적이었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때로 남을 돕고자 하는 행위가 도리어 부담을 주고 상처가 되는 경우를 봅니다. 돕는 사람은 그게 이웃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받는 사람 편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고 자존감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나 위로는 반드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최대한 배려해야 하며 결코 무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전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위협과 저주만을 선포함으로써 위로는커녕 재난을 가져다주는 거짓 위로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끝이 없는 헛된 말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3절).

바울은 <사람들이 …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니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7)고 했습니다. 엘리바스를 위시한 욥의 친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헛된 말을 율법과 버무려 그럴듯한 진리로 포장해 욥을 공격하며 율법 선생을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자신들의 말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일 뿐이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딤후 2:16) 누구나 헛된 말이 길어지면 결국은 경건을 해칩니다. <경건치 아니함>이란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새 언약의 내용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짓밟고 가증한 사탄의 주장들로 채우는 행위를 말합니다. 헛된 말을 삼가십시오. 헛된 말로 남을 해치거나 복음을 유린하지 마십시오.


치고 머리 흔들기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하면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4절).

<머리를 흔든다>는 것은 남을 조롱하거나 정죄할 때 취하는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관습입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시 22:7).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렘 18:16). 이것은 비록 친구들은 자기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도리어 고통스럽게 하고 끝없는 헛된 말로 힘들게 할지라도 자기는 결코 그들을 치거나 그들을 향해 머리를 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욥의 다짐입니다. 주님은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벧전 2:22-24)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치고 머리를 흔들지 아니하는 자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