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7m 광야 여정(고전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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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m
고전 10:1-5
광야 여정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출애굽을 한 사람들입니다. 애굽은 이방인, 이교도가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같은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애굽에서 탈출해 가나안으로 가는 순례객입니다. 우리의 현주소는 애굽을 탈출한 광야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자마자 홍해를 건넜습니다. 우리도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이 우리에게는 세례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우리가 생각하는 형식의 세례는 아니지만 홍해를 건너는 것은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미 홍해를 건넜다는 뜻입니다. 애굽에서 살며 묻은 때를 홍해를 건너며 씻은 겁니다. 우리도 세상살이하며 묻은 때를 세례를 통해 깨끗이 청산한 겁니다. 옛사람을 홍해에 수장한 겁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를 건넜다는 뜻이고, 세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에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배수의 진입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넌 것입니다. 사실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까지 가는데 굳이 홍해를 건널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건너기 위해 우회를 시킨 것입니다. 왜냐면 두 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애굽에 대한 미련을 접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배수의 진을 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세상으로, 옛사람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라는 배수의 진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가나안만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애굽은 잊어야 합니다. 홍해를 건넜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는 것은 출애굽한지 한 달 반이 지났다는 겁니다. 2-3절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 때 성인만 60만이었습니다. 여자들, 아이들, 짐승들까지 다 합치면 200만이 넘는 대군입니다. 이 커다란 무리가 한 달 반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양식이 떨어진 겁니다. 한 달 반을 못 버틴 겁니다.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농사도, 사냥도 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행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만이 양식이 바닥났는데 앞으로 40년을 버텨야 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식은 만나입니다. 양식이 다 떨어지고 나서부터 먹은 게 만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40년간 만나를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기 16장 31절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5절도 보십시오.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우리의 주식은 무엇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당연히 과거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어야 할 만나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8장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가 날마다 먹어야 할 신령한 음식입니다. 광야 여정에서는 떡이나 밥이 아니라 만나를 먹어야 삽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고린도전서 10장 5절을 보시면,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 합니다.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먹었던 사람 가운데 광야에서 실패한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다 망했습니다. 멸망 수준입니다. 출애굽 1세대가 60만인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신령한 음식을 먹고 40년을 살았음에도 왜 그들이 실패했습니까? 처음에는 만나를 대환영했습니다. 꿀 섞은 과자 같다며 다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민수기 11장 4절 이하입니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아침, 점심, 저녁에도 만나를 먹으니 진저리가 난 겁니다. 그래서 자꾸만 애굽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뭔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재미가 없지요? 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말씀뿐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건조한 사막뿐입니다. 낙이 없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애굽은 얼마나 현란하고 재미있습니까? 요즘 아이들이 교회를 싫어합니다. 교회 나오니 재미가 없습니다. 세상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하고 홍해까지 건넜지만 끝내 애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툭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선동하고 작당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다 죽습니다. 민수기 21장 5절 이하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그들이 말하는 하찮은 음식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어지는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우리도 매 끼 만나입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만나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별 수 없습니다. 만나를 먹어야 삽니다. 말씀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애굽에서 살 때는 죄의 하수인으로 살았기에 즐길 거리, 먹거리가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 처한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에서는 먹거리가 만나뿐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때는 우리 세상입니다. 온갖 산해진미가 풍성합니다. 왜 교회는 밤낮 말씀뿐이냐며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더욱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다음은 본문 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령한 음식에 이어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합니다. 제가 1979년에 독일로 갔습니다. 여러 문화적 충격 가운데 하나가 생수 값입니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생수가 아직 없었습니다. 생수 시장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갔더니 카페에 앉아 생수병 작은 것 하나 놓고 마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값이 커피나 주스보다 더 비쌌습니다. 학생들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다 낮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생수보다 싼 맥주를 마시는 겁니다. 독일은 식수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뭘 하려면 끓여야 하고, 걸러야 합니다. 그래서 수입이 많다 보니 비싼 겁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신령한 음료는 모세가 내었던 암반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던 폭염은 살인적이었습니다. 광야였으니 물이 귀했습니다. 목이 타들어 가는데 몇 날 며칠을 가도 물이 없다가 암반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을 살면서 그렇게 생수를 마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셔야 할 물이 바로 그런 물입니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허락한 생수입니다. 주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음료입니다. 요즘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호박이 말라비틀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여러분은 목마르지 않으십니까? 탄산음료는 안 됩니다. 맥주로도 안 됩니다. 막걸리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반석에서 솟아나는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음료로 목을 축여야 더는 기갈에 허덕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음료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7장 38절 이하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바로 성령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셔야 할 생수입니다.
우리가 광야생활하며 꼭 먹고 마셔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말씀과 성령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가나안 입성에 실패하거나 낙오하는 불행한 성도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3v9m1p3FH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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