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빈정거림(욥 15:7-16)

2012. 6. 15.

빈정거림

욥 15:7-16


엘리바스가 대놓고 욥을 비난하며 온갖 빈정거림으로 그를 비웃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들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툭툭 내뱉는 빈정거림으로 상대를 시험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그 어떤 음모나 미움에도 끄떡하지 않던 사람도 남의 빈정거림에는 자칫 이성을 잃는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빈정거림은 그 가진 수완만큼이나 조심성 있게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게 현명합니다. 


네가 정말 잘 났느냐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7절).

엘리바스의 이 말은 <네가 우리보다 한참이나 더 어른이어서 저 태고의 가장 지혜롭고 순수했던 시절의 명철과 판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아담보다 먼저 있었느냐? 아담은 죄 때문에 고난을 겪었는데 이토록 극심한 환난을 당하고 있는 네가 죄인이 아니란 말이냐? 네가 그렇게 잘 났느냐?>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지독한 언어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남편이 술에 취해 귀가하여 아내를 향해 <네가 그렇게 잘 났느냐>며 비아냥거리다 결국 폭력까지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아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능하고 수동적인 남편의 원초적인 열등감의 표현입니다. 엘리바스의 노골적인 빈정거림도 이를테면 그런 콤플렉스의 발로일 것입니다.


네가 홀로 지혜를 가졌느냐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8절).

이는 마치 하늘의 궁정회의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다 듣기라도 한 듯 혼자서 지혜로운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하의 현군이었던 솔로몬도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전 7:29)고 했습니다. 꾀는 결코 지혜가 아닙니다. 엘리바스는 지금 자신의 꾀로 지혜를 자처하며 도리어 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가진 것이 <지혜냐 꾀냐>는 주님의 이 말씀으로 판가름 납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네가 홀로 의로우냐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14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의롭지 않습니다. 엘리바스의 고발처럼 <악을 저지르기를 물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16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의로운 자들입니다. 삶이나 행위가 깨끗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대속하사 우리를 의로운 자들로 명명해 주셔서 죄인이지만 의인이 된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의인으로 간주해 주신 이 <칭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불법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 4:7-8).

우리는 다 믿음안에서 의인된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