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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







</p>

<!-- paragraph:p0002 -->
<p class="p1">2012. 6. 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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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바람의 지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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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욥 15: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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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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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욥과 그의 세 친구간의 공방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습니다. 세 친구들은 욥이 그들의 충고와 훈계를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되받아치며 반발한 데 대해 격분하며 더욱 신랄하게 공격합니다. 욥이 그들에게 대답하고 항변하는 동안 그들은 마치 소송에서 이기려는 변호사들처럼 더욱 강력한 논리와 주장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말한 2절의 &lt;헛된 지식&gt;이란 문자적으로는 &lt;바람의 지식&gt;이란 뜻이며, 과장되고 공허한 지식이란 뜻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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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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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무익한 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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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gt;(3절).</p>
<!-- paragraph:p0010 -->
<p class="p1">엘리바스는 욥이 전에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명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어리석은 짓을 행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무익한 말을 하므로 완전히 지혜를 떠났다고 합니다. 하기야 세상에는 헛된 지식,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가치한 지식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알량한 자신의 그 지식으로 교만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그 어떤 말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무책임하고 무익해서 하나님이나 이웃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덕을 세우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말일 경우에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자신의 지식의 말이나 논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욕이 되고 누가 된다면 그것은 곧 바람의 지식일 뿐이며 그저 무익하고 공허한 소리일 뿐입니다. 부디 사람에게 힘이 되고 형제에게 용기를 주는 말, 하나님의 기쁨과 보람이 되는 지식만을 추구하십시오. 그것이 곧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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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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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간사한 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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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gt;(5절).</p>
<!-- paragraph:p0014 -->
<p class="p1">간사한 혀야 말로 공허하고 무익한 바람의 지식을 확대 재생산하는 도구에 다름아닙니다. 마치 악덕 장사꾼이 국내산과 수입산을 섞어 교묘하게 소비자들을 속여 팔 듯이 바람의 지식을 선전하는 사람도 간사한 혀를 놀리며 경건을 가장해 죄악을 쏟아내되 선한 말 악한 말을 감쪽같이 뒤섞습니다. 마치 옛 뱀이 교활한 혀로 하와를 속인 것처럼(롬 16:18)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지금 욥의 혀가 간사하다고 비난합니다. 주님은 자기에게 나오는 나다나엘을 보시며 &lt;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gt;(요 1:47)고 하셨습니다. 그는 빌립이 주님을 소개했을 때 &lt;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gt;며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드러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그의 그런 진솔한 자기 표현을 귀하게 평가하신 겁니다. 간사함이나 교활함보다 솔직함과 정직함을 바라시는 주님의 기대에 진심으로 부응하시길 빕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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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정죄하는 입술</p>
<!-- paragraph:p0017 -->
<p class="p1">&lt;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gt;(6절).</p>
<!-- paragraph:p0018 -->
<p class="p1">남을 용서하고 격려하고 축복하지 않고 단죄하고 고소하는 입술은 그 어떤 정연한 논리와 달변을 구사한다 해도 그 모두가 헛된 바람의 지식일 뿐입니다. 엘리바스의 화술을 보십시오. 자기가 아니라 욥의 입이 욥 자신을 정죄한다며 자기는 모든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고 오직 욥에게만 혐의를 씌웁니다. 주님은 간음하다 그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lt;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gt;(요 8:10)고 하셨습니다. 또 &lt;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gt;(요 8:7)고도 하셨습니다. 남을 정죄하는 입술이 아니라 축복하는 입술을 가지십시오. 그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며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