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0m 하나님?(창 1:1-2; 요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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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0m
본문: 창 1:1-2, 요 1:1-3
제목: 하나님?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잘 아시는 대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이란 칭호는 별 다른 게 아니고 하나 둘 셋 넷 할 때 숫자에 존칭을 붙인 게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한 분 되심, 유일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구약성서 히브리말 하나님 칭호인 엘로힘을 하나님으로 번역했습니다. 헬라말의 데오스를 하나님이라 번역한 겁니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입니다. 하늘님이란 뜻입니다. 가톨릭에서 쓰고 있는 하느님 칭호도 그들만의 고유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무속신앙에서 써오던 천신을 차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로 삼으려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개신교가 사용하는 하나님이란 칭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한 분이어서 하나님이라면, 오늘이 삼위일체주일인데, 삼위일체는 또 무엇입니까? 삼위일체는 셋이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나님에서는 하나가 강합니다. 하나라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셋이라는 얘기입니까? 본문 창세기 1장 1절을 히브리말로 하면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이라고 읽습니다.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입니다. 단수는 엘입니다. 직역하자면, 태초에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란 뜻의 히브리말은 루아흐입니다. 태초에 이미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천지창조에 개입했다는 뜻입니다. 신약으로 가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헬라말로 “데오스”가 하나님입니다.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그런데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로고스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2절도 보면, 만물이 로고스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합니다. 로고스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로고스가 같이 사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고스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14절에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육신이 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 의하면 엘이 아니라 엘로힘이 맞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합작품이 바로 천지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이 정확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동체입니다. 우리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이 첫 날부터 창조를 시작하신 후 엿새째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는 순간입니다. 인간 창조 전에 세 분 하나님이 회의를 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일신관이 아닙니다. 단일신관은 유대교입니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단일신관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 분입니다. 그러면 삼신론입니까? 삼신론이 기독교의 신관입니까? 이것 또한 아닙니다. 삼신론은 원래 동양의 신관입니다. 유교는 삼재라 하여 천, 지, 인입니다. 불교는 삼보라 하여, 불보, 법보, 승보입니다. 삼신할매, 삼신상제가 우리 전통에서는 결정적입니다. 태신, 산신, 육신입니다. 태신은 아기를 점지하고, 산신은 순산하게 하고, 육신은 탈 없이 양육하게 하는 신입니다. 저희 집이 예수 믿기 전에 삼신상제 제단이 부엌에 있었습니다. 단군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인, 환웅, 환검입니다.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임에도 삼신론이 아닙니다.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름하여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머리 숫자는 분명 셋인데, 본질적으로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한 분이라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셋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괴물입니다. 확실히 수적으로는 세 분입니다. 삼위입니다. 세 분이 독자적 위상을 가집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하나입니다. 세 분이 완전하고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게 신비한 하나님의 존재방식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역사적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오해와 이설(異說)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양태론입니다. 원래는 한 분 하나님이나 구약 때는 성부의 모습으로, 신약 때는 성자의 모습으로, 교회시대는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었다는 설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 한 시간 한 장소에 나옵니다. 따라서 양태론은 비성서적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유비론입니다. 자연을 들어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를 비유하여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강을 들어서는 하류, 중류, 상류에 비유하여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문제는 독자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나무뿌리만 갖고 나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모여야 비로소 한 분 하나님이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소위 군주신론이란 게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군주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성부, 성자, 성령을 위계적 계급으로 이해합니다. 성부가 가장 높고, 성자가 그 다음이고, 성령은 가장 열등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삼위일체는 수평적인데 수직적으로 계급적으로 위계적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삼위 하나님은 계급도 서열도 없습니다.
무조건 믿으면 되지 왜 이런 게 중요하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가 우리의 신앙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신앙, 기도, 예배의 대상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다른 종교는 대상이 별로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천지신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 신을 말합니다. 대상보다는 내 소원이 중요합니다. 어떤 신이든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됩니다. 그래서 치성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 놓고 비는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소신껏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이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알고 그에 맞추어 신앙생활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 백성이 하나님 아는 지식이 없어 다 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제 맘대로 신앙생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실 기도를 바칩시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zPDmtYiuq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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