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이야기(창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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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3m
선악과 이야기
창 3:1-19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선악과는 고전적인 주제입니다. 고색창연하다 못해 진부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선악과에 대해 우리는 할 말이 많습니다. 살인한 것도 아닌데 과일 하나 따 먹은 것으로 낙원에서 쫓아낸 게 심한 게 아니냐 하는 겁니다. 그렇게도 귀한 것이라면 동산 가장자리에 두지 않고 왜 가운데에 두셨는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기에 사전에 인간이 그걸 따먹을 줄 아셨는데 왜 굳이 그걸 만들었나? 그러므로 인간 타락의 주범이 하나님 아닌가? 어떻게든 따먹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셨어야 옳은 것 아닌가 하며 그 책임을 하나님께 두려고 합니다.
죄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살인죄든 과일 하나 먹은 죄든 죄는 그만큼 결정적입니다. 독은 많이 먹는다고 죽는 게 아닙니다. 선악과는 뱀의 독입니다. 맹독입니다. 한 사발 마셔야만 죽는 게 아닙니다. 그 양이 과일 하나만 해도 온 우주가 죽음에로 떨어지는 죄입니다.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었다는 것은 유혹과 시험은 항상 우리 삶 한복판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혹과 시험은 피할 수 없고 부딪쳐 이겨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고 자유롭고 인격적인 주체로 만들었습니다. 그 선택과 결단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자유는 두셨으나 정산,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너무 도식적으로, 경직적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와 몇 번째 자리에 앉아 예배드릴지 예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유요 선택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하나님이 결정하셨습니다. 이 예정 안에서 순간순간 어떻게 결정하고 결단할 것인가는 우리 자유의지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이를테면 총론이고, 우리의 자유의지는 각론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오늘 우리 예배하는 자리까지 예정하셨다면, 자유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처신, 결단, 선택에 관한 최종적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할 자유까지도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는 존재로 우리를 만들었다면 이것은 기계입니다.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유의지,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개념을 여러분이 바르게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이점에서 혼선이나 오해가 없으면 선악과 문제는 풀립니다. 의문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이 됩니다.
본문 3절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2장 17절을 보십시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엄중한 경고가 있었음에도 결국 선악과를 범합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당장 죽었습니까? 죽기는커녕 선악과를 범한 후에도 천수를 다합니다. 창세기 5장 4-5절입니다.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러면 하나님이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단순히 겁주는 차원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기에 중요한 동사 두 개가 나옵니다. 하나는 <피했다>, 또 하나는 <숨었다>입니다. 누구를 피하고 숨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한 후에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난 최초 현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반가워한 게 아니라 두려워서 피하고 숨었습니다. 이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고 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게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달아났습니다. 하나님조차도 가물가물합니다. 당신이 어디서 왔습니까? 침팬지인지 오랑우탄일까 생각합니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지적 능력의 파국입니다. 7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복식문화의 기원이 시작됩니다. 타락 전에는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치부가 없었습니다. 죄와 더불어 부끄러움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벗었는지 입었는지 몰랐습니다. 벗었다와 입었다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옷을 입은 적이 없기에 벗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죄를 짓고 나니 가리게 된 것입니다. 마약을 모르면 마약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약의 매력을 알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모르는 게 약입니다. 도박을 알면 거기서 못 빠져나옵니다. 그게 곧 죽음이고 파탄인 걸 알면서도 우리나라 마약중독자가 30만입니다. 맛을 알면 못 빠져나온다는 겁니다. 유럽 쪽에 가면 FKK가 있습니다. 나체촌입니다. 직역하면 나체문화라는 겁니다. 뮌헨에도 FKK가 있습니다. 뮌헨의 엥글리쉬가르텐이 바로 FKK입니다. 거기서는 옷을 입은 사람이 이상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자유롭게 살도록 하셨는데, 범죄하면서 옷을 입기 시작한 겁니다.
다음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먹지 말라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고 물으니, 아담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살게 한 그 여자가 선악과를 먹으라 해서 내가 먹었습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책임은 내게 있지 않고 여자에게 있으며, 그 여자를 내게 준 하나님께 있습니다고 한 겁니다. 여자는 뱀이 곧 자연이 내게 줘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다 깨졌습니다. 처음에 아담이 하와를 봤을 때,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합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나니 서로 네 탓이라고 합니다. 이 둘 사이에 심각한 파국이 온 것입니다. 바로 죄가 그 파국의 주범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결국 살인극까지 벌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돌로 살해합니다. 죄가 가져다 준 인간관계의 타락입니다.
마지막으로 환경의 파탄입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지구환경의 생태적 파국도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인간의 범죄 전에는 땅이 포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돌연변이가 생긴 겁니다. 독초가 나고, 동물들의 이빨이 날카로워집니다. 졸지에 자연계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의 질서로 재편되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땅이 타락했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천적입니다. 끝도 한도 없이 인간이 자연을 학대합니다. 그래서 자연이 보복하는 시대입니다. 자연의 심각한 보복에 우리는 맞닥뜨렸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숭숭 뚫렸습니다. 바울은 피조물이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땅의 저주가 인간으로부터 왔다면, 그 회복도 인간의 회복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환경운동은 인간회복운동부터 시작해야 맞습니다.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자연도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진정한 환경과 자연의 청지기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우주를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관리를 위탁하십니다. 잘 보살피고 자연이 너희 삶의 요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자연과 인간은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된 겁니다. 공동운명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 자연의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시대에 생태학적 파국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때 이미 놀라운 통찰력으로 자연의 회복을 인간의 회복으로부터 가능함을 본 것입니다.
환경주일을 맞아 자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십시다. 인간의 타락은 총체적인 단절과 파국을 불러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정녕 죽는다’고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