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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8년 10월 5일 주일낮예배<br>본문: 창 1:26-28<br>제목: 크레아치오 엑스 니힐로(creatio ex nihil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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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어제는 탤런트 최진실 씨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성남 영생원에서 화장하고, 고인이 다니던 강남침례교회의 교회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공인 중의 공인이었기에 국민들이 받은 충격이 컸습니다. 어제 장례식은 거의 국민장 수준으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근래 자살한 탤런트가 많았습니다. 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 모두 자살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개신교 신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회에서 자살하라고 가르쳤나요? </p>
<!-- paragraph:p0004 -->
<p>유럽에서는 19세기까지만해도 자살이 가장 무서운 범죄였습니다. 자살한 시체는 끌고 다니며 모욕을 준 다음 불태웠습니다. 당시에는 부활을 염두에 두었기에 매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불태운 것은 엄청난 모욕이었습니다. 자살자의 재산은 몰수했고, 귀족이었으면 그 신분을 박탈하고, 유족들도 평민으로 강등시켜 성에서 추방했습니다. 심지어 자살미수자도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서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왜냐면 자살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요, 인간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간이 침범했다고 신성모독죄를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미계통에서는 자살이나 자살미수자를 범죄시 합니다. 자살미수자를 처벌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살을 방조하거나 도우면 형법 253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왜 자살합니까? 우리는 자살자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면 안 됩니다. 누구나 자살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극단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잠재적 자살자들입니다. 이번에는 연예인들이 집중적으로 자살했지만 <br>평범한 사람들도 자살합니다. 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불안해 합니까? </p>
<!-- paragraph:p0005 -->
<p>성경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계시는 영적 세계만 있었지, 물리적 세계인 우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무(無)로부터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크레아치오 엑스 니힐로(creatio ex nihilo)입니다. 성서적 창조론을 규정하는 중요한 명제입니다. 이 무도 절대 무입니다. “우크온”이라는 절대 무입니다. “메온”은 상대 무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을 상대 무라고 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상대 무입니다.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절대 무로부터 2절 상대 무를 창조하시고, 3절에 가시적인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과학자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태초에 무에서 빅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140억년 전에 무로부터 빅뱅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주기원론의 대세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그러므로 우리는 태초에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허무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원초적인 두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br>하나는 회귀본능 곧 무에 대한 향수입니다. 코끼리나 연어만 귀소본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게도 있습니다. 명절에 귀성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사회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원적지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꾸만 허무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연어는 악착같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죽습니다. 코끼리도 그렇다고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향민의 망향가를 들어보십시오. 얼마나 구슬픕니까? 이런 것들은 본능적인 겁니다. 원적지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 소망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허무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심층에 다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있습니다. <br>다른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있습니다. 허무로부터 아버지에 의해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성, 종교심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아버지 품에 대한 향수가 있기에 다 종교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무얼 믿든지 믿게 되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믿고 있습니다. 참 존재이신 하나님에 의해 지음받았기에 아버지 품에 대한 향수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폴 틸리히는 인간을 경계선상의 존재라고 했습니다. 허무와 존재 사이에 서 있다는 존재라는 겁니다. 이것을 칼 융도 말했는데, 사실 이것은 어거스틴의 창조론이요 인간론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인간은 이 두 가지 향수를 존재론적으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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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허무가 무서운 것은 구체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은 그냥 두렵습니다. 대상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죽으면 편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허무의 유혹입니다. 허무는 우리를 비존재로 우리를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무서운 병입니다. 그냥 살기 싫은 겁니다. 그냥 허무한 겁니다. </p>
<!-- paragraph:p0008 -->
<p>그러면 어떻게 해야 허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까? 허무와 존재의 경계선상에서 허무가 아니라 존재를 결단하는 겁니다. 존재로 자기를 던지는 겁니다. 허무에 던지면 자살입니다. 존재로 던지면 사는 겁니다. 왜냐면 이것이 아버지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 제1장에서 그는 우리 인생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절대 평안이 없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존재이신 아버지의 품에 안겨야 허무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살방지의 근본적인 대책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해야만 반대쪽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허무와 불안에 떨고,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자살로 이르게 됩니다. </p>
<!-- paragraph:p0009 -->
<p>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C3TV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푸른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는 여러분, 허무냐 존재냐의 경계선상에서 허무의 유혹을 뿌리치고 존재로 자신을 던지십시오. 이것이 근본적인 자살방지 대책입니다. 이것이 자살이라는 최악의 비극으로부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지키는 길입니다. 그래서 평안과 기쁨의 삶으로 이 세상을 이기시며 사시길 기원합니다. <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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