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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마술사의 견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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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1956년 포항에서 태어나 37세를 일기로 요절한 해직교사 정영상 시인의 유작입니다. </p>

<!-- paragraph:p0002 -->
<p class="p1"><br></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목욕탕에 가면</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1"><br></p><span>
</span><!-- paragraph:p0005 -->
<p class="p3"><span>바닥에 뒹구는</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3"><span>일회용 면도기들이</span></p>

<!-- paragraph:p0007 -->
<p class="p3"><span>언젠가 두고 보자며</span></p>

<!-- paragraph:p0008 -->
<p class="p3"><span>나를 벼르는 것 같습니다.</span></p>

<!-- paragraph:p0009 -->
<p class="p3"><span>쓰레기 더미가 된 일회용들이</span></p>

<!-- paragraph:p0010 -->
<p class="p3"><span>으드득 이를 갈며 큰 재앙이 되어</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3"><span>다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3"><span>면도를 하는 동안에도, 때를 미는 동안에도</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3"><span>계속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는</span></p>

<!-- paragraph:p0014 -->
<p class="p3"><span>보람도 없이 억울하게 버려지는 물들이</span></p>

<!-- paragraph:p0015 -->
<p class="p3"><span>“인간들아,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며 씨불씨불 흘러가는 물들이</span></p>

<!-- paragraph:p0016 -->
<p class="p3"><span>바닥에 질펀한 죄를 씻어 내리며 언젠가, 언젠가 두고 보자!</span></p>

<!-- paragraph:p0017 -->
<p class="p3"><span>그렇게 벼르는 것 같습니다.</span></p>

<!-- paragraph:p0018 -->
<p class="p3"><br></p>
<!-- paragraph:p0019 -->
<p class="p2">그는 살아 생전 생태문제에 남다른 시적 관심을 보였는데 이 작품도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치 괴테가 그린 마술사의 견습생과도 같습니다. 그는 무엇이든 생기게 하는 재주만 배웠지 멈추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없는 동안 마술을 부려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을 멎게 하지는 못했기에 결국 그 물에 떠밀려 죽고 맙니다. 현대인들도 막장까지 간 소비문명의 발걸음을 스스로 멈추는 재간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세계가 인간의 탐욕이라는 동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란 탐욕이라는 궤도를 타고 무한질주하는 열차와도 같습니다. &lt;보다 빨리! 보다 편리하게! 보다 많이!&gt; 이게 이 시대 문명인들의 광기어린 지상목표 아닙니까? 그래서 기업들은 늘 과잉생산에 바쁘고 사람들은 그 재고 처리를 위해 오늘도 소비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불응할 자유도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온갖 매체를 다 동원해 전방위적으로 탐욕을 부추기는 마당에 자유는 무슨 놈의 자유입니까? 아무튼 지구는 이제 인간이 배출한 폐기물에 뒤덮여 소멸 생성의 순환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공장들의 과잉 생산으로 망해간다는데도 그 기계를 정지시킬  재간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p>

<!-- paragraph:p0020 -->
<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2">바울은 이미 2천 년 전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며 고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롬 8:22). 충격적입니다. 들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보다 슬픔과 고통의 탄식을 들은 것입니다. 자연이 그 본래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허무와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며 지금도 자유와 해방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과 관련된 사상으로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고 공동의 운명체로 본 것입니다. 역사란 단순한 정신사 혹은 실존사가 아니라 우주사요 자연사요 보편사라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22 -->
<p class="p2">동양의 노자(老子)도 그렇습니다. 그를 추상적인 사색가로만 보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는 그 시대 조류에 철저하게 저항한 혁명아였습니다. </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4"><span class="s1"><b><span>불상현(不尙賢)</span></b></span> 소위 지도자니 엘리트니 하는 권력자 따위를 떠받들지 마라. </p>

<!-- paragraph:p0025 -->
<p class="p4"><span class="s1"><b><span>사민불쟁(使民不爭)</span></b></span> 그러면 권력투쟁이나 권모술수 같은 것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데 정력을 소모하지 않을 것이다. </p>

<!-- paragraph:p0026 -->
<p class="p4"><span class="s1"><b><span>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span></b></span> 사람들이 제일로 치는 돈을 귀하게 여기지마라. </p>

<!-- paragraph:p0027 -->
<p class="p4"><span class="s1"><b><span>사민불위도(使民不爲盜)</span></b></span> 그러면 훔치고 등치고 사기협잡하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부정부패할 일이 없을 것이다. </p>

<!-- paragraph:p0028 -->
<p class="p4"><span class="s1"><b><span>불견가욕(不見可欲)</span></b></span> 상품 선전에 눈을 팔지 마라. </p>

<!-- paragraph:p0029 -->
<p class="p4"><span class="s1"><b><span>사민심불란(使民心不亂)</span></b></span> 그러면 미혹을 받아 충동구매 과잉구매할 일이 없을 것이다.</p>

<!-- paragraph:p0030 -->
<p class="p4">  .</p>

<!-- paragraph:p0031 -->
<p class="p4">  .</p>

<!-- paragraph:p0032 -->
<p class="p4">  . </p>

<!-- paragraph:p0033 -->
<p class="p4"><span class="s1"><b><span>위무위즉무불치(爲無爲則無不治)</span></b></span> 제일 좋은 정부란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지 않고 가장 적게 다스리는 것이다. - 도덕경 제3장.</p>

<!-- paragraph:p0034 -->
<p class="p4"><br></p>
<!-- paragraph:p0035 -->
<p class="p4">제 멋대로 갖다 붙인 해석입니다만 노자 역시도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경계하며 가장 자연에 가까운, 가장 자연친화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깨우치려한 사상가였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도 자연이 탄식하며 고대하는 사람은 &lt;마술사의 견습생&gt;이 아니라 &lt;하나님의 아들들&gt;(롬 8:19)임을 결코 잊지 말 일입니다.</p>

<!-- paragraph:p0036 -->
<p class="p4"><br></p>

<!-- paragraph:p0037 -->
<p class="p4"><br></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