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욥의 기도(욥 13:20-28)

2012.6.2

욥의 기도

욥 13:20-28


친구들과 변론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점점 더 공세를 취하던 욥이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호소하며 기도 드립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의 이 기도를 들어 주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라>(20절)며 다짐도 합니다. 이것은 멀리 달아나지 않고 늘 주님의 면전에서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게 손을 대지 마소서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21절).

극심한 육신의 고통으로 고문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손을 대사 그토록 참혹한 고난을 당케하시는지는 깨닫지 못했으나 아무튼 그 모든 육신의 질병이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임은 알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의 모든 고난은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그게 비록 모진 운명이고 아픈 불행이라 해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나 주님의 손길과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내 육신의 고통과 그 시련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미처 모를 뿐입니다.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에 오게 하셨다(창45:5)고 믿으며 고백했던 요셉처럼 만사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결국은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임도 믿어 의심치 마십시오.


나를 두렵게 하지 마옵소서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21절).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위엄 앞에서 두려워 떨게 하지 말아달라는 간구인데 확실히 하나님은 우리를 떨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대면>(신 34:10)했던 모세도 두려워 떨었고, 이사야, 하박국 같은 선지자들도 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시68:35)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할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이 두렵다는 것은 정작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탓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두려워하면 세상이 주는 온갖 두려움은 다 상대화되고 우리 눈 앞에서 그 자취를 감춥니다.

존 낙스의 묘비에는 <여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선교사가 누워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궁극적인 주권자로 알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세력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며<두려워하지 말라!>(마 10:26,28,31)고 당부하셨습니다.

부디 주님을 두려워하시므로 세상의 위협을 이기시고, 주님께 기도하시므로 더욱 담대하게 세상을 사는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나의 죄를 알게하옵소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23절).

욥도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당연히 자신의 죄성과 허물을 깊이 시인하고 긍정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원수처럼 여기신다며(24절), 자기가 지금 낙엽처럼 검불처럼 날려간다(25절)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발에 차꼬를 채우시고(27절), 자기의 몸을 물건처럼 낡고 의복처럼 좀이 먹게 하셨다(28절)고도 합니다.

다윗도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19:12) 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죄를 죄로 여길 줄 모르며, 죄를 알고 나서도 그것을 미워할 만큼 처절하게 깨닫지도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제대로 인식하고 또 피할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면 욥처럼 <나의 죄를 알게 하소서> 하며 기도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