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7m 성령충만과 성령소멸(삼상 16: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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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7m
본문: 삼상 16:13-16
제목: 성령충만과 성령소멸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3절 하반절을 다시 봅니다.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것은 다윗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14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이 성령을 소멸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과 제2대 왕인 다윗이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한 사람은 성령충만했고, 또 한 사람은 성령이 그를 떠나시니 성령을 소멸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이 두 사람의 생애는 첨예하게 갈립니다. 성령충만했던 다윗은 성군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됩니다. 그런데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성령을 완전히 소멸하고 악령에 씌어 날뛰다가 블레셋 군대와의 전쟁에서 세 아들도 잃고 본인도 중상을 입고 결국 자살합니다. 자기 칼에 엎어져 자살합니다. 성령충만의 복과 성령소멸의 불행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예입니다.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강림절을 기해서 성령의 시대가 활짝 개막됩니다. 구약시대는 성부의 시대, 신약은 성자의 시대, 성자가 승천한 이후 오순절을 기해 성령이 강림하면서 성령의 시대가 개막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서 성령과의 관계가 결정적이고 중요합니다. 성령과의 관계에 모든 게 걸려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과 성령소멸은 다 물량적인 표현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처음엔 성령이 조금 임하고, 이후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성령이 더 많이 임하셔서 나를 가득 채우는 상태가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라리 성령모독입니다. 성령은 인격체요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물량적으로 성령을 취급할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이 양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무슨 뜻입니까? 영력이 뛰어난 목사님들이 집회하면서 성령 받아라, 불 받아라 할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던져주는 성령을 넙죽 받는 행위가 성령충만입니까? 성령은 물건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 내가 전적으로 복종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내가 성령을 많이 확보해서 나를 성령으로 가득 채우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나를 충분히 지배하고 다스리며 당신의 뜻대로 내 삶과 운명을 이끌어 가시는 상태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강림이나 성령세례, 성령의 내주라는 말과는 구분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내 안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내주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다 물세례 외에 성령세례도 받았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신앙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세례를 받은 날과 시는 모르겠으나,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여러분이 중심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의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성령세례의 물증입니다. 성령은 물량적인 분이 아니라 한 분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여러분 가운데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 안 하든, 느끼든 못 느끼든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 상태가 성령충만은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과 긴밀히 교감하는 상태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여러분이 결단하며 사는 상태, 여러분의 욕구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욕구대로, 성령의 감동대로 사는 상태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은 내주하시지만 얼마든지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 무관심하고, 성령의 역사를 짓누르며 자기 욕심과 욕망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이 규정하기를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살면서도 육신적 욕구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 조차도 의식하지 않으며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신자는 맞으나 육에 속한 신자입니다.
성령소멸과 비슷한 용어가 성령훼방입니다. 항상 성령의 역사를 내가 훼방하며 사는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세상의 영, 곧 마귀가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의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령 계시 따로, 내 삶의 모습 따로 놉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를 성령의 계시에 부단히 결단하며 살아야 하는데, 성령이 부단히 역사하시지만 내 인간적 욕구가 너무도 강하고, 내 악한 의지가 항상 성령의 역사를 외면하고 짓눌러 버립니다. 이것이 성령훼방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성령의 계시와 역사에 응답하지 않으면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고민하십니다. 성령은 내가 이 사람 안에 있어야 할지, 아니면 떠나야 할지 고민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계속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을 훼방하면 성령소멸로 갑니다. 사울 안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떠나듯 그렇게 성령은 떠납니다. 그러면 끝장입니다. 비극에 직면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대의 위기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성령세례를 받을 만한 짓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일방적으로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기에 내게 성령을 보내신 겁니다. 성령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교리적으로 말씀드리면 견인입니다. 견인은 자동차가 고장 나면 견인차가 와서 견인하듯, 성령의 역할이 바로 견인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인을 천국까지 인도하는 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만일 성령이 나를 떠나시면 나는 천애의 고아가 되는 겁니다. 성령과의 관계가 결정적이라는 게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천국까지 인도하는 분이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강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천국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결정적인 분을 내가 소외시키고, 홀대하고, 짓눌러 버리면 끝입니다. 성령훼방은 참으로 악성입니다. 성령의 역사인줄 알고도 무시하는 게 성령훼방입니다. 어떤 경우에 성령이 감동을 주시면 감동을 받는데, 그 감동에 순종을 하면 여러 희생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감동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나의 추함과 인간성이 더 강력하게 발동하면서 그것을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아주 고약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건 틀린 건데, 이것은 성령이 내게 주시는 감동이고 기회인데, 이것을 접수하면 내가 희생을 해야 하니까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신앙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습니다. 이게 성령훼방입니다. 사울은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사실 사울이나 다윗은 구약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은 사람이기에 남다른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들을 강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성령을 기만했습니다. 항상 성령을 거스리고 훼방했습니다. 사울 안에서 성령이 학대를 당하고 당하다가 결국 사울을 포기하시는 겁니다. 성령이 사울을 떠나십니다.
부디 성령충만하십시오. 왜 성령충만하지 못할까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요? 우리의 영성이 투명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의 영성이 투명해야 거기에 하나님의 모습이 비칩니다. 그래야 성령이 내게 감동을 주시는구나, 성령의 계시구나 하는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영성이 투명하지 못하면, 영성이 둔감하면 성령이 아무리 역사를 해봐야 감을 못 잡습니다. 아예 감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성이 투명할까요? 기도와 말씀, 자선, 주일성수 등등입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훈련입니다. 영성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몫입니다. 영성을 잘 관리하라고 교회에서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야 영적인 분별력이 생깁니다. 영적인 감각이 예민해집니다. 그때 비로소 성령의 계시와 역사를 감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성령과의 교감이 가능해집니다. 세상 죄에 절면 내 안에 아무리 성령이 역사해도 아무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해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십시오. 성령과의 관계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져 가십시오. 관리하십시오. 그래야 더 풍성한 성령의 은혜를 입습니다. 전적으로 성령과의 관계에 달렸음을 잊지 마십시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oCYd8IM5x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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