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하나님의 외로움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맨 처음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아름다움에 스스로 감동하신 대목입니다. 그런데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그 장엄한 광채를 꼭 누군가와 함께 즐기고 싶으신데 대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뭔가를 나누고 싶은 관계란 곧 사랑일 수밖에 없으며 그 사랑의 정점에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의 그 사랑과 외로움을 철저하게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빛의 아름다움보다는 어두움의 유혹에 빠진 탓입니다. 그로부터 인간은 줄곧 눈 뜬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빛을 저버린 자의 필연적인 숙명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굴속이었으며 좁고 어두운 굴속이 곧 세상의 전부인 양 착각하며 살아 온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굴 밖의 아름다움은 전혀 깨닫지 못한 체 평생을 좁은 굴속에서 아웅다웅 살다 가는 것입니다. 하여 그런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경은 더욱 외로우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친 선물이 그의 면전에서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비애감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곁으로 내 존재의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누구도 결코 하나님이 만드신 빛의 아름다움에 눈 뜨지 못할 것입니다. 끝없는 소유욕과 단호히 결별함으로써 그분이 창조하신 자연과 인간의 내면에 담긴 빛을 체험해야 하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짝사랑에 뜨거운 가슴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성이 이 5월의 푸르름 만큼이나 투명하고 순수해져야 합니다. 그게 바로 육신은 비록 땅에서 사나 하늘의 영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며 오늘의 자리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기쁨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욕심대로 산 것이 도리어 가난한 삶이었음을 퍼뜩 깨닫고 <더 가짐>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늘 외로우실거란 생각을 접지 마십시오. 자연과 세계 역시도 오직 소유와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한 결코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도리어 문을 안으로 꼭꼭 걸어 잠근 체 자신을 방어하려고만 들 것이며 혹 누군가가 소유에 성공한다 해도 그 속에 담긴 원색의 비밀은 끝내 알아채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풀 한 포기 앞에서도 한낱 눈 뜬 장님일 뿐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잖습니까? 한 사람의 진실과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순수한 사랑뿐입니다. 그렇다면 만남의 감동이 없는데도 과연 진실한 사연이 오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늘 타인이며 언제나 외로울 뿐입니다. 설령 소유의 욕망이 충족되고 정복의 쾌감이 채워지고 이해관계의 정산이 다 이뤄졌다 해도 남는 것은 오직 의례적인 인사와 습관적인 일상, 혹은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결별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버리는 일에 너무 익숙해 있고 무감각해 있습니다. 


이제 시시각각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계시를 좀 더 온 몸으로 느끼며 하나님의 영성과 생명의 출렁거림을 좀 더 강렬하게 체험합시다. 연인의 깨끗한 사랑을 도도히 멸시하는 교만한 자가 아니라 그 사랑과 프러포즈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정직하게 응답하는 겸손한 자가 됩시다. 그런 인생이야말로 하나님의 <첫 탄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달으며 그분의 감격에 함께 하는 성령충만한 존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