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0n 므나이야기(눅 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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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0n 푸른교회 청년부 헌신예배
본문: 눅 19:11-27
제목: 므나 이야기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9장인데, 마태복음 25장에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오늘 본문의 므나와 마태복음의 달란트를 같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얘기라 보기가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므나 비유에는 종이 열 명이 나옵니다. 달란트 비유에는 종이 세 사람만 나옵니다. 또 달란트 비유에는 주인이 종 세 사람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 각자의 능력에 따라 5, 2, 1달란트를 맡긴 데 반해, 므나 비유에서는 종 열 명에게 한 므나 씩 맡깁니다. 따라서 두 비유는 비록 형태는 비슷하나 내용은 다르고, 주님이 이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다르다고 봅니다.
므나는 당시 그리스와 로마에서 통용되던 화폐로서 은전입니다. 달란트는 금화입니다. 한 므나는 백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입니다. 그러니까 노동자 한 사람이 백일 동안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 한 므나입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입니다. 그러니까 므나와 달란트는 화폐 가치가 큰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달란트도 있고 므나도 있습니다. 달란트는 우리 각자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고유한 사명, 과제입니다. 그러니까 달란트는 다 다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다릅니다. 각자가 받은 고유한 직분이 다릅니다. 그리고 므나도 있습니다. 므나는 열 사람이면 열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가장 보편적인 과제입니다. 기독교에 입문하면 신자가 공히 주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과제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입니까? 주일성수, 십일조, 기도, 전도, 이웃사랑 등입니다. 다 똑같이 주님으로부터 받는 일반적인 과제들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되면 국민으로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방, 납세 등의 의무입니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환경보전의 의무입니다. 이 의무들을 저버리면 처벌받습니다. 므나는 바로 이런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달란트가 있는가 하면 신자면 모두가 받는 므나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에 성실해야 하고 책임적이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어떤 귀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한 므나 씩을 맡깁니다. 내가 돌아오기까지 열심히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봅니다. 첫 번째 종이 나와 말하기를, 제가 장사해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합니다. 주인이 칭찬을 합니다. 잘 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열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고 합니다. 두 번째 종이 나와서 말하기를, 제가 열심히 장사해서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역시 주인이 잘 했다며 칭찬하고,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줍니다. 마지막 세 번째 종이 말하기를,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수건에 잘 싸두었습니다. 그때 주인이 말하기를, 이 학한 종이라고 하며, 엄히 책망합니다. 27절 하반절을 보면, 저 원수를 내 앞에 끌고 와서 죽이라고까지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 므나 씩을 주시고, 다시 올 때까지 장사해라, 내가 재림할 때까지 사업을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라고 당부하신 겁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은 주인의 분부대로 하지 않고 원금을 상환한 겁니다. 원금까지 까먹은 건 아닌데, 왜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 책망했을까요?
우선 자기가 받은 한 므나에 대해 이 종은 무심했습니다. 무관심, 무책임한 겁니다. 물론 한 므나는 큰 돈은 아닙니다.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노동자가 하루 일하면 10만원 번다고 하면 100데나리온이 한 므나이니 약 천만 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활용해서 장사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둔 겁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는 세 번째 종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고 합니다. 같은 뜻입니다. 세 번째 종이 특히 우리의 정곡을 찌릅니다. 대개 우리가 그렇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님께로부터 한 므나를 받았는데, 그 받은 므나에 대해 우리는 무심합니다. 열심히 뭔가를 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주인이 오면 엄정한 결산을 할 텐데, 그때 부끄럽지 않으려면 열심히 장사해야겠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나 노력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한 므나라고 우습게 여겨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인은 작은 일에 충성한 자야 큰일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종은 큰일을 맡겼을 때 잘 해야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므나에 대해 충실하지 못하면 본인의 장담과는 상관없이 큰일을 맡겨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주인의 판단이 정확합니다. 청년들이여, 남다른 달란트는 아직 못 받았을지 모르나 한 사람의 신자로서 므나는 다 받았습니다. 받은 한 므나에 대해 좀 더 성실하기를 바랍니다. 주인은 언제 올지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판단하는 것보다는 빨리 오십니다. 그때 부끄럼과 저주를 당치 않기 위해서는 한 므나에 대해 보다 책임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음은 이 세 번째 종은 작은 희생이나 작은 양보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인색함 때문에 결국 실패했습니다. 장사하기가 어디 쉽습니까? 그것도 소자본으로 이익을 남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럴 때 찾아오는 유혹은 차라리 모험하지 말고 수건에 싸두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금은 지킨다는 논리입니다. 기도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생활, 만만치 않습니다. 젊은이가 주일성수한다는 것, 어떤 과제보다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십일조 한다는 것, 대단한 일입니다. 거기에 희생이 따르고 용기가 필요합니다. 시간도 바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도리어 기꺼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일성수를 하고, 기도생활을 잘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힘껏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십일조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자기가 받은 한 므나에 대해 충실하게 응답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기에 받은 므나를 수건에 싸 둡니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의무가 분명 있는데도 수건에 싸두는 겁니다. 희생이 두렵고 양보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은 그러다가 결국 혹독한 책망과 준엄한 심판에 이릅니다. 한 므나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괜찮습니다. 잘 해보려다가 본의 아니게 손해를 본 것은 주님이 얼마든지 격려하시면서 이해하십니다. 주님은 결과와는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열 므나를 남긴 종이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이나 똑같이 칭찬하십니다. 부디 용기를 내십시오. 더욱 담대함으로 주님 앞에서 아름답고 성실하십시오.
세 번째 종은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주인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본문 20절 이하를 보면 세 번째 종의 변명이 나옵니다. 당신이 엄한 사람임을 무서워해서,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 종은 제 주인을 터무니없이 잘못 알았습니다. 냉혹하게 시비를 가린다는 점에서 주인이 엄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심지 않은 것을 거두고 두지 않은 것을 취한다는 말은 주인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이 종은 주인을 악당으로 본 겁니다. 당신은 강도다, 도둑이다, 조폭이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 어디에도 주인이 악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은 아주 상식적이고 공의로운 사람입니다. 주인을 걸고 넘어진 이 종의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내게 므나를 맡긴 주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주인을 매도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종은 불신앙 때문에 결국 자기가 받은 한 므나에 무책임했습니다. 주인이 므나를 주며 내가 다시 돌아올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장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종은 그 주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진짜 주인이 돌아온다고 생각했다면, 무책임하게 므나를 수건에 싸두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주님도 다시 오신다고 하시며 승천하셨는데,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얼마나 고대하며 위기의식을 갖고서 종말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짚어볼 일입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겁니다. 주인은 반드시 돌아왔습니다. 주님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늦게 오시지는 않을 겁니다. 위기의식을 갖고서 받은 므나에 충실하십시다. 본문의 첫째와 두 번째 종처럼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기며, 칭찬과 상급을 받는 복된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므나를 고스란히 주인에게 내밀었던 세 번째 종은 본전은 잃지 않았으나 그 살아온 과정과 자세가 잘못되었기에 악한 종이라 책망 받고 내 앞에서 죽이라는 엄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므나 비유를 가슴에 담고 삽시다. 좀 더 종말론적 자세로 신앙생활하십시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ibL0bya4W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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