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513n: 주께 하듯(엡 5:21-24)

2012년 5월 13일 푸른교회 주일오후예배

본문: 엡 5:21-24

제목: 주께 하듯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오늘 본문의 주제는 복종입니다. 본문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5장과 6장의 주제가 복종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도원에 가라는 내용입니까? 저 광화문 사거리에 나가 전도하라는 겁니까?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절과 2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오전예배의 본문인 에베소서 6장 1절도 보십시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복종이 교회, 가정, 사회 생활의 원리입니다. 6장 5절도 보십시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복종이 우리 신자의 삶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4절 이하입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순진해야 천국 간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처럼 순진하라거나 순수하라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의존성, 복종심을 가리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복종은 어린아이의 생존 조건입니다. 특히 유대 사회에서는 12세까지는 거의 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아이가 가지는 자유나 권리는 없고 오직 복종만 강요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2세가 되면 성인식을 통해 비로소 한 사람의 자유인이 됩니다. 주님이 바로 이 절대적인 복종을 염두에 두시고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가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복종에 있습니다. 주님 말씀에 대한 복종이 신앙의 정수입니다. 반면에 불복종이나 불순종은 불신앙입니다. 성경이 죄악이라 말씀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9장 23절 이하에 보면, 부자가 천국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도 쉽게 가는 천국을 부자가 왜 못 갑니까? 부자는 모든 것을 제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부자는 돈을 믿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돈을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 가기가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 갑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돈에 의지하기 때문에 천국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만 복종을 강요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당신이 솔선수범하여 그야말로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복종할 게 따로 있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까지도 아버지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복종에 있습니다. 그는 복종의 극치를 보인 사람입니다. 정말 아브라함이야말로 믿음의 조상이 되어 마땅합니다.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일언반구 없이 무조건 떠났습니다. 고대 종족시대에 부모를 떠난다는 것, 종족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게다가 100세에 얻은 이삭을 바치라했을 때도 일말의 저항 없이 복종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살인적인 복종이 그로 하여금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독보적인 복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6장을 보면, 우리의 교회와 가정, 사회생활에서 복종을 관철하되 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복종하되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성도 상호간의 복종,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 부모에 대한 복종, 상전에 대한 복종의 절대적인 규범이 주께 하듯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가지 복종을 보겠습니다.


21절에 나오는 피차 복종입니다.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 서로 복종하라는 겁니다. 어느 일방에만 복종을 강요하지 말고 서로 복종하라는 겁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길 때 내가 선생이 되어 발을 씻겼은즉 너희도 서로 씻기라고 합니다. 상대가 내 발을 씻어 주기를 강요하지 말고 서로 씻어 주라는 겁니다. 피차 주께 하듯 섬기며 복종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못하는 게 복종입니다. 남에게 양보하고 남을 섬기는 것이 가장 안 됩니다. 교회에서 서로 복종만 하면 아무 문제될 게 없으나 이게 안 됩니다. 서로 양보가 안 됩니다. 피차 복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한 번 틀어지면 세상 사람보다 훨씬 더 지독합니다. 신자일수록 서로 섬기고 용납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서로 섬기며 복종하고 용납하라고 합니다. 이게 성경이 말씀하는 상생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22절에 나오는 아내의 복종입니다. 아내들에게만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해서 마음 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손해를 보는 게 아닙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아내가 남편만 못하기 때문에 복종을 요구한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남편보다 훨씬 잘 났을 수도 있고, 더 유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능력 이전에 아내에게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유한 배역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복종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배역이 노예라 해서 그 배우가 삼류라는 뜻은 아닙니다. 복종에 관한 한 아내들이 주연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배역을 배분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연출자이신 주님이 아내들에게 복종을 주문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정서와 기호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각본이 원하는 대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주님이 내게 주신 배역대로 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감독이신 주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만 신앙입니다. 감독의 연출대로 하지 않고 배우가 제멋대로 연기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왜 이토록 복종을 강조합니까? 마태복음 25장 40절입니다.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에 대한 복종이 실제 내 삶에서 성도 간에 서로 복종하는 것으로, 상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고백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6절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단지 백성을 위해 받은 고난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수모를 그리스도를 위한 것으로 생각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복종을 주님이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으로 받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피차 복종하면, 믿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상전에게 복종하면, 믿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면 그것을 다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 실 생활에서는 그런 모습으로 확인되고 증명되며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주께 하듯 피차 복종하며 교회생활하고,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며, 주께 하듯 상전에게 복종함으로 사회생활하면 그 교회, 가정, 사회가 천국 같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복종을 강조하고 그 기준으로 주께 하듯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다 주님께 한 것으로 받아준다고 하십니다. 이게 바로 섬김과 복종의 가장 큰 원리요 원칙이자 기준입니다. 


여러분, 복종은 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 주님의 분부입니다. 복종하면 한 만큼 내게 덕이 되고 유익이 됩니다. 주께 하듯 복종함으로 교회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하셔서 복종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복이 삶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CofPAiAMQ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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