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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2012년 4월 29일 푸른교회주일낮예배/창립기념주일</p>
<!-- paragraph:p0002 -->
<p class="p1">본문: 계 3:7-13</p>
<!-- paragraph:p0003 -->
<p class="p1">제목: 우리가 꿈꾸는 교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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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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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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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 창립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목사님의 설교가 좋고, 크고 최신식으로 지은 건물이어서 쾌적하고 편리하고, 교회학교 시스템도 잘 갖추어서 아이들 걱정 없고, 주차장이 넓어서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 일 할 사람이 많아서 자기 하나 쯤은 자리를 비워도 아무 마음의 부담이 없는 교회입니까?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면 몇몇 대형교회들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꿈꾸는 교회가 대형교회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세속적입니다.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우리 교회는 다시 한 번 우리가 모델로 삼아 옳은 이상적인 교회를 확인하면 좋겠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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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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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 본문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계시록을 1세기말에 기록했는데,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사도 가운데 요한만 유일하게 생존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 배신하고 자살했고,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은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요한만 살아남아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에베소교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요한마저도 로마 당국에 의해 유배를 당합니다. 유배지가 밧모섬입니다. 거기서 주후 95년 경에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밧모섬은 지중해 동부 에게해(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여러 섬 가운데 돌로 이루어진 섬이어서 채석장으로 유명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 돌섬인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형식의 글입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7교회에 보내는 편지글 형식입니다. 소아시아의 7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이 7교회에 주님이 보내신 서한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고, 책망과 칭찬을 받은 교회도 있고, 칭찬만 받은 교회도 있습니다. 칭찬만 받은 교회는 두 곳인데 빌라델비아와 서머나교회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교회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하여 그 교회는 주님의 칭찬을 들었을까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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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우선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끝까지 주님의 뜻을 추구한 교회였습니다. 8절 중반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작은 능력이란 말은 빌라델비아교회의 물리적 조건을 뜻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 중 가장 사이즈가 작고, 창립연도도 가장 일천했고, 성도 구성원도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작은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겁니다. 10절 상반절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 그럼에도 이 교회는 주님의 뜻을 성실하게 추구했기에 주님의 말씀을 착실히 지켰기에 주님이 칭찬만 했습니다. 남보다 더 조건이 열악하고 불리한데 주님 말씀에 더욱 성실히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귀하게 보셨습니다. 예를 들어 7교회 중 부요했던 교회는 라오디게아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습니다. 3장 17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장 부자고 가장 큰 교회요 능력이 많았으나 주님이 비웃고 계십니다. 라오디게아교회 못지않게 교세가 컸던 사데교회도 책망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절). 얼마나 혹독하고 가혹한 말씀입니까?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었기에 주님이 책망하십니다. 주님을 좇기보다는 인간적 생각과 탐욕으로 교회를 운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눈에는 죽은 교회였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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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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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여러분, 우리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타종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입니다.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비비면 거기서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하며 마왕이 나옵니다. 뭐든 다 이뤄줍니다. 보십시오. 초능력은 마왕이 가졌는데, 주인은 알라딘이라는 소년입니다. 이게 세상 종교입니다. 내 소원 성취를 위해 초월적인 힘을 가진 신을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종교들은 주체가 &lt;나&gt;입니다. 신은 내 &lt;종&gt;입니다. 요술램프에서 나오는 마왕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반대입니다. 주체가 &lt;하나님&gt;입니다. 누구의 뜻을 추구하는 종교입니까? 주님의 뜻입니다. 다른 종교는 다 내 뜻, 내 소원, 내 바람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자는 종교입니다. 주님 앞에서 내 뜻을 꺾자는 종교입니다. 신을 이용해서 내 소원을 이루자는 것,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오직 주님의 뜻입니다. 내 작은 능력으로 어떻게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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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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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빌라델비아교회는 사람들 눈에는 정말 작고 보잘 것 없는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그 작은 능력으로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위대하고 복 되며, 살아있는 교회, 교회다운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야 말로 우리가 꿈꿔 마땅한 모범적인 교회 아닙니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자며 몸부림쳤던 교회가 빌라델비아교회였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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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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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뿐만 아니라 빌라델비아교회는 많은 어려움에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8절). 당시 소아시아교회가 처한 박해상황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 통치를 받던 식민지였습니다. 당시 로마도 식민지 백성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황제는 제11대 황제 도미티안이었습니다. 그때는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집중적으로 황제 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거부하면, 잔혹한 박해를 가했고, 많은 이들이 배교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을 포기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수제자가 폴리캅이라는 교부입니다. 그의 순교 얘기가 유명합니다. 주후 155년 2월 23일에 화형을 당합니다. 화형대에 서 있는데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회유합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를 부인하고 황제를 주라 고백하면 살려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내가 예수를 믿어 온 86년 동안 주님이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 없는데 어떻게 내가 배신할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 폴리캅이 빌라델비아교회와 함께 주님께 칭찬 받은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폴리캅과 함께 12명이 화형을 당했는데, 그중 10명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교회였으나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신하지 않고 여러 명의 순교자까지 낸 교회였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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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당시 빌라델비아교회가 받은 고난은 외부 박해만이 아닙니다. 9절입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유대인 신자들이 파당을 만들어 기득권을 주장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교회 내부적인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그들을 향해 사탄의 집단이라고 했겠습니까? 빌라델비아교회가 대단한 것은 그 작은 몸에도 안팎의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로마의 박해를 겪으면서도 순교자를 배출하고, 안으로는 유대인들의 온갖 횡포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신앙의 정절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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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예수를 믿으면 만사가 형통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고난도 많이 따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차라리 노예살이를 했을망정 적과 피 흘려 싸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나니 성난 바로의 군대가 뒤쫓아 오고 홍해가 앞을 가로 막고 아말렉과도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선동하는 내부의 못된 세력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교회도 흔히 그 와중에 많은 분이 다치고, 상처입고, 좌절하여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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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3 -->
<p class="p1">7교회 중 에베소교회를 주님이 책망하시며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교회는 처음 믿음, 처음의 순수한 열정, 초심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빌라델비아교회를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환경은 너무도 열악하고, 조건은 상대적으로 너무도 나쁜데, 흔들림없이 초심을 지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야말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는 겁니다. 모진 고난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지 않은 빌라델비아교회를 모델로 삼읍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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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주님이 평가하신 빌라델비아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또 한 가지는 주어진 비전, 기회에 최선을 다해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8절 상반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열린 문은 그들에게 주어진 선한 기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열린 문은 대개 선교의 기회입니다(특히 바울에게서). 그런데 문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열려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교회는 주어진 기회에 집중했습니다. 열려진 기회에서 주님의 기대를 충족시켰습니다. 우리 교회도 아직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 교회에도 아직 문이 열려있을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비전이 무엇일까요? 2015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2015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 문은 아직도 우리 앞에 열려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거기에 힘껏 응답하고 아직 닫치지 않은 기회를 힘껏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여건, 조건,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구요? 맞습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제가 늘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교회는 우리보다 더 불리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악조건 하에서 주님이 열어주신 그 문에 힘껏 부응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문을 닫지 않겠다. 누구도 강제로 그 문을 닫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희망의 문을 마냥 너희 앞에 열어놓겠노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2015 프로젝트는 마치 중무장한 골리앗과도 같습니다. 반면 우리는 미소년이며 완전 비무장의 소년 다윗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겼습니까? 다윗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윗의 실력이 골리앗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와는 다릅니다. 다윗이 힘이 있고, 재주가 뛰어나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윗 대신 싸워서 이겨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보다 세서 이겼습니까? 하나님이 져주셨습니다. 2015 프로젝트라는 골리앗과의 한 판, 누가 이길까요?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신 문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고 결단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골리앗 앞에서 다 떨고 있는 것입니다. 체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산이 없다 생각하여 철저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다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황당한 싸움에 임하면서도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골리앗과 맞붙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자 믿음으로 그 싸움에 임했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뻔한 싸움이었지만 뜻 밖에도 다윗이 이겼습니다. </p>
<!-- paragraph:p0026 -->
<p class="p2"><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저는 요즘 ‘나는 왜 살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가족들 때문에 산다고 합니다. 저는 아닙니다. 제 가족은 제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삽니다.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푸른교회를 위해서 산다구요? 저는 푸른교회를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제가 푸른교회를 창립한지 벌써 17년입니다. 그때가 90년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는 누구든 교회간판만 달면 몇 백 명은 쉽게 되던 때였습니다. 저도 대단하지만, 다른 교회였으면 저도 벌써 퇴장당해야 합니다. 제가 푸른교회를 떠날 수 없는 것은 빚 때문입니다. 가족도 아니고, 교회 때문도 아니라면 나는 왜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하나님은 제 앞에 문을 열어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설교, 목회의 문입니다. 2015 프로젝트라는 열린 문 때문에 아직은 좀 더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문을 닫으실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다 희망 때문에 삽니다. 열린 문 때문에 삽니다. 비전 때문에 삽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열린 문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귀하게 보셨습니다.</p>
<!-- paragraph:p0028 -->
<p class="p2"><br></p>
<!-- paragraph:p0029 -->
<p class="p1">빌라델비아교회를 꿈꾸십시다. 우리의 모델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칭찬과 소망의 말씀을 듣는 복된 교회가 되십시다.</p>

<!-- paragraph:p0030 -->
<p class="p1"><br></p>

<!-- paragraph:p0031 -->
<p class="p1"><a href="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mZlDBnosgUw$">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mZlDBnosgUw$</a></p>

<!-- paragraph:p0032 -->
<p class="p1"><br></p>

<!-- paragraph:p0033 -->
<p class="p1"><br></p>

<!-- paragraph:p0034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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