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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080928m: 양과 염소(마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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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9월 28일 주일낮예배<br>본문: 마 25:31-46<br>제목: 양과 염소</p>
<!-- paragraph:p0002 -->
<p>[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p>
<!-- paragraph:p0003 -->
<p><br>팔레스틴에서는 주로 양과 염소를 함께 방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낮에는 함께 치다가도 해가 지면 양과 염소의 우리가 다르다고 합니다. 양은 털이 길어서 추위에 강하고, 염소는 그렇지 않기에 해가 지면 양과 염소의 우리를 각각 달리했다고 합니다. 양은 밤에도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염소는 사방이 막힌 따뜻한 우리로 모아 들였습니다. 해가 지면 목자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주님이 목자의 이 모습을 보면서 최후심판을 생각하셨습니다. 해진 저녁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모습에서 최후심판의 모형을 떠올리신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31절 이하입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주님은 최후심판에 마치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의인과 악인을 가르십니다. 34절입니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41절입니다: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왼편의 염소들에게 선고하신 말씀입니다. 46절입니다: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최후심판 비유의 결론인데, 그렇다면 최후심판의 비유에서 심판주가 양과 염소를,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잣대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p>
<!-- paragraph:p0005 -->
<p>35절 이하입니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것이 그들이 의인으로, 양으로 분류된 근거입니다. 모두 다 선행이요 자선이요 구제입니다. 42절 이하입니다: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이들은 자선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구제를 하지 않았고, 동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선행이 없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 기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기준이 옳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천국가고 지옥가는데 근거가 됩니까? 이 기준이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있습니까?</p>
<!-- paragraph:p0006 -->
<p>만일 이 잣대라면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율법주의요 윤리주의입니다. 기독교는 선행에 의해 천국가고 지옥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비유의 참된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이 잣대를 문자 그대로 수용하면 유교나, 유대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공덕을 축적하고, 고행을 해야 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가끔 천주교는 이와 부합하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기독교는 복음주의입니다. 윤리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오늘 본문은 이런 뜻입니다. 자선하고 구제하고 선행함으로써 양이 되고 의인이 된다는 뜻이 아니고, 최후심판 때 심판주 오른쪽에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 때 자선하며 살고, 구제하며 살며, 선행을 베풀며 산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도덕이나 선행, 자선을 강변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선하지 않고, 구제 안 하면 염소가 되어 지옥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마지막 때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 때 선행을 하며 살았다는 것일 뿐입니다. 반면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 때 비정하게 산다는 것입니다.</p>
<!-- paragraph:p0008 -->
<p>여러분, 염소와 양은 태생적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양으로 태어나고, 염소로 태어나는 겁니다. 염소로 태어나서 자선했다고 양 되는 게 아닙니다. 양으로 태어나서 비정하게 살았다고 염소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사과가 열어서 비로소 사과나무가 되는 게 아니고,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맺는 것입니다. 열매가 그 나무를 결정하지 않고, 다만 결과물일 뿐입니다. 태생적으로 배나무이기에 배가 열리는 겁니다. 배가 열어서 배나무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선행한다고 의인되는 게 아니고, 의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로 태어나는 겁니다. 양으로 태어났기에 자선하고 구제하는 겁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양과 염소는 태어날 때 결정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예정입니다. 누구도 원해서 양으로, 염소로 태어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양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양이냐 염소냐는 우리의 선행, 의지,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p>
<!-- paragraph:p0009 -->
<p>여러분, 믿어서 구원얻습니까? 아닙니다. 구원 얻었기에 믿는 겁니다. 구원 얻지 못한 사람은 결코 믿지 못합니다. 왜 우리는 기독교를 믿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다만 열매일 뿐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억지로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결코 믿지 못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극악한 박해가 가해져도 믿습니다.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열매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추론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증거요 열매요 물증입니다. 내가 양이라는 사실에 대한 물증이 바로 믿음입니다. 의인들은 이 세상을 살 때 자선하며 삽니다. 남을 구제하며 삽니다. 그러나 염소들은 이 세상을 살 때 악하게 삽니다. 이웃이 보이지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염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
<!-- paragraph:p0010 -->
<p>올해 우리는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이제 3개월 남았습니다. 이제 연말결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연말결산이 중간심판 쯤 된다면, 이 때 우리가 의인이며 양이라는 사실을 올해 여러분이 행하신 선행으로 주님 앞에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선하고 선행하고 구제하며 사셨습니까? 사과를 못 열어도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이지만 참으로 딱한 사과나무입니다. 열매가 없으니 사과나무를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올해 여러분이 제대로 살아 오셨다면 여러분의 열매를 내어 보이며 내가 사과나무다, 배나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면 주님이나 여러분이나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양이 양처럼 안 살고 염소 흉내를 낸다면 얼마나 꼴불견입니까. 왜 염소를 따라가야 합니까? 물론 호박에 페인트 칠한다고 수박되는 게 아닙니다. 양에 페인트 칠한다고 염소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양이 페인트 칠한 채로 있다면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러분, 양처럼 사십시다. 구제하고 자선하며 사십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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