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2n: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막 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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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2일 푸른교회 주일오후예배
본문: 막 7:31-37
제목: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오늘은 우리 총회가 제정한 장애인주일입니다. 주님이 귀 먹고 어눌한 장애인을 고치신 기사가 오늘 본문입니다. 그 다음 장인 8장에서도 주님은 소경을 고치십니다. 8장 1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주님이 제자를 책망하고 계시는데,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7장과 8장에서 병자를 고치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장애까지 함께 겨냥하신 이적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눈과 귀, 혀가 풀리는 역사가 있기를 빕니다.
주님은 우선 그 장애인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33절 상반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많아도 단체로 만나시지 않습니다. 단체면담은 사절입니다. 항상 우리를 따로 만나십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장애인을 주님이 따로 만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무리 속에서 안도하지 마시고, 정말 주님을 뵙기를 원한다면 따로 만나야 합니다. 8장에 나오는 맹인을 고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가끔 우리 집사람이 열심히 믿으니 나는 집사람 덕에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부모 덕분에 천국 갈 자식은 없습니다. 물론 가족에게 신앙의 좋은 덕은 끼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따로 만나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이고, 혀가 풀려서 모든 장애가 해소됩니다. 우리 정신과 영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님은 믿음을 고무하셨습니다. 33절 하반절입니다.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특이한 장면입니다. 이것은 귀 먹고 어눌한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기 위한 스킨십입니다. 주님은 이런 식의 접촉을 통해 그 장애인의 믿음을 촉진하신 겁니다. 말을 들을 수 없기에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소통하신 겁니다. 귀머거리였기에 양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것이고, 어눌했기에 그 혀에 손을 대신 겁니다. 그 순간 장애인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주님이 장애인의 귀에 손을 넣었을 때, 혀에 손을 대셨을 때 이제 낫게 해주시려나보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8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안수하셨다고 합니다. 같은 효과를 노리신 겁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항상 주님은 환자를 고치시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자극하셨습니다. 6장 5절에 보면 주님이 고향에서는 아무 권능을 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들이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곳에는 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봐야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53절을 보면, 죽은 자를 다시 살렸는데도 그날부터 주님을 죽이기로 모의한 겁니다. 마가복음 3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나봐야 도리어 욕이 됩니다.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이적을 얘기해봐야 그게 도리어 주님을 박해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이적은 믿음이 있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 장애인들의 믿음을 자극하고 고무하신 겁니다. 주님의 권능과 우리의 믿음이 만나는 곳에 시너지가 발생하고 그게 놀라운 영적 이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기적의 공식입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라십니까? 정말 영적, 정신적, 육체적 장애가 주님의 권능으로 치유되길 바라십니까?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34절 상반절을 보면,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고 합니다. 기도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적 기도방식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연민의 표정을 지으며 신음하셨습니다. 그만큼 가슴에서 우러러 나오는 탄식으로 기도하신 겁니다. 그렇게 주님은 귀 먹고 어눌한 장애인을 고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자 기적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 치유의 권세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파이프 라인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기도라는 배관을 통해 하나님의 복과 치유의 권세가 우리 몸으로 전달됩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인 장애에서 놓여나기를 바라신다면, 주님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립니다.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며 <에바다> 하시자 그 순간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립니다.
주님의 치유의 권능이 내게 나타나는 과정과 공식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셔야 합니다. 주님만이 내 모든 장애를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신음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빕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OeGrrAmIfuY$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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