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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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초 일산에서 10대 남녀 9명이 한 때 같이 어울리던 또래 여자 친구를 무려 10시간 동안이나 야구방망이 등의 둔기로 구타해 결국 숨지자 인근 근린공원에 암매장까지 한 사실이 며칠 전 가해자 중 2명이 자수함으로써 밝혀졌습니다. 요즘 수많은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풀이해서 사탄이 쳐놓은 파멸의 그물에 걸려들고 있는 현실이 참 답답하고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사탄은 늘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이 그어놓은 금단의 경계선은 이 세상의 가장 멋진 것들을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지름길이므로 피할 게 아니라 과감히 범하라며 속삭입니다. 에덴에서의 원초적 유혹도 바로 그런 것이었는데 따라서 모든 사람의 마음의 뿌리에는 이렇듯 금단의 열매를 범하고자 하는 욕구가 마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일산의 10대들도 사탄의 그런 친절한 조언대로 살았고, 그 과정에서 그들 눈에 거슬리는 자는 그게 누구든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 무너질 담장 밑에서 열심히 구덩이를 판 무서운 아이들, 부모들은 당연히 좋은 포도 열매를 기대했지만 정작 그들이 맺은 것은 악한 들포도였고(사5:2), 더구나 그 포도알 속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맹독이 퍼져있었습니다. 이는 다 세상의 막장문화가 피워 낸 악의 꽃이 풍기는 독한 향기에 취한 결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또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돈과 쾌락이외의 것에서는 전혀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찾지 못하는 <영적 백치>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자녀들과 후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야 옳을까요?
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눈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철저한 <이미지> 세대입니다. 오로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게임과 동영상에 빠져 삽니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현란한 패션과 고급 브랜드의 유혹 속에서 그때그때의 트렌드 따라잡기에 혈안입니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심지어 책도 내용보다는 표지 디자인이 감각적이어야 삽니다. 결국 사물과 인간을 외양으로만 판단하는 기형적인 사고가 발달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우습게 여기는 극단한 내면적 빈곤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부디 진심어린 말 한 마디나 남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보석보다 더 귀한 것임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그런 것들이 우리 모두를 지키고 성숙하게 하는 참된 삶의 토양이 됨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보이지 않는 신앙세계의 참된 가치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게 얘기해줘야 합니다.
② 손쉬운 길을 좋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인내와 연단을 피하려고만 하는 자에게는 결국 어떤 길도 다 어려울 뿐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가르쳐야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빙 돌아가는 길이 도리어 더 많은 것을 얻게 하고 배우게 한다는 사실도 깨우쳐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힘들고 어려운 것을 꿋꿋이 잘 뚫고 나가는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모부터가 매사에 약게 굴면 자식도 그것을 배울 게 뻔하며 또 그런 아이를 야단치는 부모는 문제의 뿌리가 자신에게 있음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먼저 눈치 챈다는 점도 잊지 말 일입니다. 인내하는 모습, 연단을 겁내지 않는 침착함, 어려움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신앙 등은 우리 아이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더욱 강건하게 키워 갈 것입니다.
③ 사람을 진심으로 사귈 수 있도록 마음을 보다 넉넉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귐은 언제나 우리에게 넉넉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며 남을 챙겨주는 마음입니다. 어떤 이득을 노려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아끼는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는 자의 참된 삶의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가족도 끊임없이 새롭게 사귀어야 건강한 가정으로 성숙해 갈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혈연적 인연만 믿고 나가다가는 자칫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형식적인 가족질서만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대화는 겉돌고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고뇌와 아픔은 아무도 몰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진정한 사귐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또래 친구를 밤새도록 구타해 죽음에 까지 이르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슬기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한 그 집의 기둥은 어느새 좀이 슬고, 한참 뒤에야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가슴을 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