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빌닷의 비유(욥 8:8-15)

20120420 

빌닷의 비유 

욥 8:8-15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듣는 행위를 가리키지 않고 상대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보다 적극적인 경험을 뜻합니다. 빌닷은 상처 입은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는 아주 부정적인 예를 대표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진솔한 언어로 그를 격려해야 함에도 도리어 정죄하기에 급급해 위로자는커녕 욥을 더욱 힘들게 하는 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왕골과 갈대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11절).

왕골이나 갈대는 진펄이나 물에서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위선자의 어떤 거짓이나 부패한 행동들도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그 환경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토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골이나 갈대는 잠시 푸르고 좋아 보이지만 가볍고 속이 비어있어 그다지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화문석과 같은 돗자리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그나마도 거의 수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이같이 무너진다>(13절)고 합니다. 여기서도 역시 욥의 <길>과 <희망>이 왕골과 갈대에 비유되면서 결국은 그가 위선자요 저속한 자여서 그렇게 왕골과 갈대의 운명처럼 무너지고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잠언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12:18)고 했습니다. 말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삶과 신앙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의 삶, 특히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오직 자신의 기준으로만 일방적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부디 자신의 말과 생각에 대해 좀 더 책임적이고 신중하길 바랍니다.


거미와 거미줄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14절).

거미줄은 결국 걷히고 끊어집니다. 거미가 제 아무리 튼튼한 거미줄을 친다한들 그게 얼마나 견고하겠으며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그런데 위선자와 저속한 자의 운명, 희망 또한 그렇게 허무할 뿐이라며 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빌닷은 지금 착하고 진실한 사람은 잘 되고, 악하고 저속한 자는 망한다는 철저한 이분법적 잣대로 욥을 단죄하고 있습니다. 네가 굳이 잘못한 게 없다면 이 고난은 금방 끝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회개해야 할 죄가 많다는 논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방법은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고, 또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겪고 불행 당한 사람들을 대할 때 그의 아픔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섣불리 규정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보다 깊이 깨닫고 더욱 충실히 하나님의 이끄심을 감당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나무와 뿌리

<그는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그 가지가 동산에 뻗으며>(16절).

지금 한창 연두빛 잎을 내밀며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벚나무들을 보십시오. 흙이 주는 자양분을 마음껏 빨아들이고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다투어 눈부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벚나무는 갈대와 왕골처럼 진펄이나 물이 아니라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기에 더없이 든든해 보이지만 그러나 여름철 강력한 태풍이 닥치면 가지가 찢기거나 부러질 수도 있고,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빌닷의 편견과 완고함은 차라리 선두주자였던 엘리바스보다도 더 강고합니다. 욥이야말로 지금까지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부러지거나 뽑힐 것 같지 않던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린>(17절) 나무 같아 보였지만 이제 이렇게 뿌리째 뽑힌 걸 보니 그도 역시<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요 <저속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욥이 교만하고 무모하여 끝까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므로써 이렇게 그의 인생이 뿌리째 뽑히고 꺾이는 최후를 맞게됐다는 극단한 해석입니다. 빌닷의 이런 과격한 말들을 듣고 있자니 <입 속의 부드러운 혀가 도끼보다 더 무섭다>는 옛말이 절로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