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닷의 교훈(욥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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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9
빌닷의 교훈
욥 8:1-7
이제 욥의 세 친구 가운데 두 번째 주자인 빌닷이 나섭니다. 엘리바스의 담론과 욥의 반응을 살피던 빌닷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러나 빌닷은 엘리바스가 자기 주장의 근거로 한밤중의 <신비한 꿈>(7:17)을 언급한 것과는 달리 과거 세대들의 집단적 지혜에 호소합니다.
간구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5절).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4절) 심판하사 요절했기 때문에 <네 처소가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찾고 또 전능하신 이에게 부지런히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빌닷의 이런 언설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욥의 경우에 적용되는 게 옳으냐 하는 것인데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빌닷은 졸지에 당한 모든 화를 다 죄값으로 치부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분명 그렇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고 부지런히 전능하신 이에게 빌면 하나님이 그의<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십니다. 아닌게 아니라 욥기 마지막 장인 42:2에서는 욥도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을 안다>며 기도했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찾고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십시오. 그래서 늘 당신의 처소가 평안하시길 빕니다.
정직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6절).
마찬가집니다. 일반적으로는 마음이 청결하고 정직하면 재앙보다는 평안을 베푸시고, 사망보다는 생명을 더하사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는 결코 그가 청결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해서 죽음과 각종 화를 당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과 경륜이 있으셨던 예외적인 케이스였습니다. 그럼에도 빌닷이 모든 경우를 일반화했다는 데 오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하셨느니라>(벧전 3:15-16)고 했습니다. 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마 5:8) 했고,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딤전 1:5)이라 했습니다. 정직한 삶으로 당신의 처소를 평안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십시오. 당신의 청결한 마음에 비친 하나님의 모습을 뵙는 영광이 있으시길 빕니다.
비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7절).
이것은 믿는 자들의 가정이나 특히 개업하는 사업장에 예외없이 걸려있는 대표적인 축복 성구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시작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비전이 있습니다. 따라서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2)고 하셨습니다. 또한 천국은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한 줌 누룩과도 같다(마 13:31)고 하셨습니다. 비전을 가지십시오. 지금 초라하고 볼 품 없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그렇게 나중은 심히 창대하여 당신의 존재감을 널리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