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415m 고기 잡으러 가노라!(요 21:3-17)

2012년 4월 15일 주일낮예배

본문: 요 21:3-17

제목: 고기 잡으러 가노라!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본문 3절을 다시 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무슨 얘깁니까? 베드로를 위시한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낙향해서 옛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다는 얘깁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때 제자들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최소한 두 번은 뵈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이하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것이 첫 번째 해후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이것이 두 번째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이렇게 두 번이나 만났음에도 어째서 새삼 제자들은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면서 갈릴리로 돌아갔느냐는 겁니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회의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실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함으로 자기들의 아픔을 털어낼 수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겁니다. 베드로가 어지간히 큰소리를 쳤어야지요.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으며, 주와 같이 옥에도 가고, 죽는 데까지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개 여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씩이나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닭소리를 듣고 울며 통회했다고 해도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사도냐며 나 같은 것은 갈릴리 촌구석에서 물고기나 잡는 게 맞다며 옛 직업으로 돌아간 겁니다. 


문제는 낙향하여 바다에 나가보니 고기잡이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밤새도록 허탕만 치고 새벽녘에 철수하려고 하는데, 그 바닷가에 부활하신 주님이 세 번째로 나타나신 겁니다. 주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셨고, 그렇게 했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잡았습니다. 이 장면은 처음 베드로가 소명을 받을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고 했고,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때도 물고기가 너무 많아 두 배에 가득 채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며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고 사도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바로 그 첫 소명의 자리, 주님과의 첫 사랑의 장소에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나타나신 겁니다. 왜요? 그때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시며 베드로의 초심, 첫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숯불을 피우시고 준비한 생선과 떡으로 제자들을 먹이십니다. 


비로소 주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도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 했습니다. 왜냐면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뜰 숯불 가에서 주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지금 숯불 가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확인하고 계십니다. 이때가 날이 막 샐 때라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때 저 멀리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도 들렸을 겁니다. 상처 받은 한 영혼을 치유하시기 위한 주님의 고도의 영적이고 심리적이며 정신적인 처방입니다. 사실 주님도 사랑 외에 얼마든지 다른 것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왜 나를 버리고 다 달아났느냐? 왜 나를 세 번씩 부인하고 저주했느냐? 왜 낙향했느냐? 왜 옛 사람으로 돌아갔느냐?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사랑만 확인하셨습니다. 사랑이 회복되어야 주님과의 원초적인 관계가 회복됩니다. 사랑이 회복되어야 소명이 회복됩니다. 사랑이 회복되어야 무너진 믿음이 복원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거듭 사랑을 확인하고 계신 겁니다. 내 능력이나 재주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치유됩니다. 우리의 상처가 아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와 베드로의 대답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에서 주님이 물으신 사랑과 베드로가 대답한 사랑이 다릅니다. 우리말 번역은 같으나 원서에는 주님은 <아가페>로 물으셨습니다. 아가페는 신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로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상대적이고 인간적이며 선택적인 사랑으로 대답합니다. 우정이 필레오입니다. 이전이라면 베드로는 아가페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픔을 겪으며 주제 파악을 한 겁니다. 주님의 물음 중 세 번째 질문은 아가페가 아니라 <필레오>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주님이 베드로의 눈높이에 맞추신 겁니다. 주님이 한걸음 후퇴하신 겁니다. 자신도 없는데 자꾸만 아가페를 고집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베드로에게 필레오로 묻자, 베드로는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고 대답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사랑을 물으십니다. 아가페가 벅차면 필레오로 물으십니다. 우정 같은 사랑 정도는 가능하겠느냐며 물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계십니다. 그 수준의 사랑만이라도 해 달라는 겁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든 오늘 부활하사 다시 한 번 나를 찾아 갈릴리까지 오신 주님 앞에서 확실하게 내 언어로 고백합시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가페는 자신 없으나 필레오는 저도 가능합니다. 그래야 그간의 모든 상처와 아픔이 치유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초심이 회복됩니다. 그래야 내 사명과 소명도 복원되고, 내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베드로도 다른 제자들도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서 불같은 생을 살다가 다 영예롭게 순교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을 되찾고 초심을 회복하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당부하시고 분부하신 일에 더욱 정진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43Iul9nVJ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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