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408n: 그 날에(눅 24:13-35)

2012년 4월 8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눅 24:13-35

제목: 그 날에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13절 상반절 ‘그 날에’는 부활절 당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절 당일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오후 저물 무렵 예루살렘 서북쪽에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두 제자가 가면서 경험한 얘기입니다. 물론 이 두 제자는 열두 제자 가운데 두 사람이란 뜻은 아니고 주님을 따른 다른 제자들입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10킬로미터(25리)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입니다. 아마 그 두 제자는 엠마오 출신인 것 같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당일에 엠마오 출신의 두 제자가 낙향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습니까? 우선 그들의 두 눈이 가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15절 이하입니다.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 보거나 듣지 못합니다. 깊은 영적 맹목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다가오셔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지만 곁에 두고도 주님을 볼 눈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못 뵈면 누구나 이렇게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볼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봐도 깨닫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낙향하던 두 제자가 그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깊은 슬픔에 빠져있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아직도 이 사람들은 십자가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새벽에 이미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감격에 빠져있어야 할 사람들이 십자가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부활하신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이렇게 늘 슬픈 표정을 띠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제대로 만났다면 이들이 슬픈 표정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들은 실망에 빠져있습니다. 20절 이하입니다.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주님에 대한 실망의 빛이 역력합니다. 우리는 그가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허무하게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는 겁니다. 주님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토로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당시 이들은 치명적인 불신앙에 빠져있습니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당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의 그 부활소식을 받아들일만한 믿음이 없었던 겁니다. 부활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여인들이 전한 주님의 부활소식을 그들이 믿었더라면, 낙향할 일이 없었을 겁니다. 25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여인들이 부활소식을 전하기 전에, 선지자들이 숱하게 주님의 부활을 예고했고, 주님도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예고하셨는데 안 믿었다고 책망하시는 겁니다. 낙향이 왠 말이냐? 좌절이 왠 말이냐? 주님이 안타까워하시며 책망하시는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런 그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고 친히 찾아가 주셨습니다. 맹목과 슬픔과 좌절과 불신에 빠져서 주님이 부활하신 그 날 낙향하며 예루살렘을 등지고 있는 제자를 찾아가셔서 친히 동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쁜 구석이 없고 잘난 데가 없는데 툭하면 좌절하고 맹목에 빠지고 불신앙에 엎어져 언제나 엠마오로 뒷걸음질 치는 우리지만,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 구도자가 아닙니다. 항상 주님이 나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찾아온 주체가 주님입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27절입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2절을 보면,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라고 합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접근해 말씀을 깨우치게 하실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아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남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때로는 목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시자 그들의 어두웠던 눈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31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부활체가 되면 금방 보였다가 안 보일 수도 있고, 문을 닫았으나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여기도 보십시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는 순간 주님은 사라지셨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뵈면 무엇보다도 우리 눈이 열려 주님이 보입니다. 진리가 보입니다. 영안이 열려야 신령한 게 보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면 깨달음도 오고, 감동도 오고, 그 말씀 앞에서 결단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주님을 뵙고 말씀을 들으면 누구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진한 감동이 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이 오면 거기에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풀어주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말씀을 풀어주는 이가 주님인 줄 몰랐지만, 엠마오의 두 제자는 주님이 말씀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 말씀을 풀어주시고 해석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움직이고 뜨거워지는 겁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33절 이하입니다.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좌절하고 실망해서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옛 삶으로 돌아가던 그들을 도상에서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복귀시키셨습니다. 이것은 회복을 뜻합니다. 등지고 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은 회복입니다. 누가복음 제일 마지막 절인 52-53절을 보십시오.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그들이 경배했다는 것은 예배생활의 회복을 뜻하고, 큰 기쁨으로 찬송했다는 것은 참된 기쁨을 되찾았다는 겁니다. 늘 성전에 있었다는 것은 등졌던 교회생활을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엠마오로 낙향하다 예루살렘으로 복귀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로의 회복입니다. 예배와 찬송과 성전생활을 회복했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렇게 우리의 가려진 눈을 밝히시고, 냉랭한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잃었던 것들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부활의 은총과 생명력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6lYzzMay7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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