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408m: 홀연히 변화되리라(고전 15:51-54)

2012년 4월 8일 주일낮예배/부활주일

본문: 고전 15:51-54

제목: 홀연히 변화되리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부활절을 맞으신 여러분께 새 생명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제가 봉독한 본문 51절 상반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여기서 말하는 비밀은 부활의 비밀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게 부활입니까? 그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었다가 산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있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있고, 주님의 절친인 나사로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부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다만 죽었다 살아난 사람, 곧 회생하고 소생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면 왜 그 사람들은 부활한 사람이 아닐까요? 성경은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부활의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면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진정한 본질, 비밀은 무엇입니까? 본문 51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은 세상 종말을 고하는 천사의 나팔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천사들의 나팔입니다. 그때 순식간에 우리가 다 변한다는 겁니다. 변화가 부활입니다. 변화가 부활의 핵심입니다. 그냥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소생입니다. 어떻게 변화 됩니까? 52절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가 살다 죽으면 우리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환원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가 홀연히 변화되면 그때는 절대 썩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그런 몸으로 변화된다는 겁니다.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비한 몸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지금 우리 몸은 죽습니다. 부활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사의 마지막 나팔과 함께 우리가 변화하여 부활체가 되면, 신비한 몸으로 변하면, 그때는 영원히 썩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5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릴 때 아직도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죽지 않고 살아있던 사람들입니다. 죽은 사람만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면서 살아나고, 그때 살아있던 사람은 살아있는 채로 부활합니다. 그래서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부활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죽었다 살아나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 부활한 사람은 다시 죽을 수 없습니다. 부활체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이 아니라 소생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인 것입니다. 주님은 영으로 천국 가신 게 아닙니다. 부활체로 천국 가셨습니다. 천국에서 영으로 계신 게 아니라 천국에서 부활체로 계십니다. 


그러면 왜 부활은 그 핵심이 변화일까요? 곤충이 탈피를 하듯이 우리의 지금 몸으로는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부활한 이후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그 조건에 맞는 몸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반드시>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옷을 갈아입듯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신비한 부활체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낡지도 죽지 않을 몸으로 갈아입는 게 부활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활을 통해 새롭게 갈아입을 신령한 몸, 부활체는 어떤 것일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서 비유하기를, 씨앗과 꽃에 비유합니다. 적절한 비유입니다. 씨앗은 어떤 씨앗도 볼품이 없습니다. 코스모스 씨는 때가 잔뜩 낀 손톱 같은 모양입니다. 나팔꽃 씨는 쥐똥처럼 생겼습니다. 봉숭아 씨는 들깨처럼 생겼습니다. 하여간 씨앗은 작고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땅에 심어 꽃이 피면 어떻게 됩니가? 코스모스는 얼마나 청순합니까? 나팔꽃은 얼마나 여리고 순수합니까? 봉숭아는 얼마나 소박하고 그 빛깔이 곱습니까? 씨앗과 꽃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를테면 씨앗처럼 볼품이 없습니다. 나중에 부활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애벌레와 나비를 비교해 보십시오. 애벌레는 징그럽습니다. 배추벌레가 나중에 노랑나비가 됩니다. 굼벵이와 매미를 비교해 보십시오. 계란과 병아리를 비교해 보십시오. 상상이 안 됩니다. 본질은 같으나 모양이 그렇게 다릅니다. 우리가 부활하면 그렇게 변합니다. 42절 이하를 보십시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꽃씨처럼 육의 몸을 심고 신령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다시 피어나는 게 부활입니다. 그때는 누구나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때는 장애인도 없습니다. 키가 작아 고민할 사람도 없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사지를 잃은 사람도 걱정할 게 없고, 화장(火葬)한 사람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원자와 분자가 모여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혼미한 정신도 우주관도 다 변합니다. 인간관계도 다 변합니다. 가족관계도 다 재편됩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관계로 변합니다. 물론 의식의 연속성은 있습니다. 부활세계로 우리가 들어가도 저 사람이 내 부모였다, 내 아내 남편이었다, 내 자식이었다는 것은 분간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과 같은 혈연관계가 연장되진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다 한 형제자매가 됩니다. 어떤 분은 부활한 후에도 지금의 남편, 아내와 살까봐 부활하고 싶지 않다는 분도 있습니다. 자기가 배신한 첫사랑 만날까봐 부활이 두렵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앙금이 다 해소된 상태에서 기쁨으로 최상의 영광으로 재회하는 겁니다. 부활세계에서는 누구를 만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부활 때 장가도 시집도 안 가고 천사처럼 산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상이 안 됩니다. 너무나 완전하고 신비한 세계이기에 우리 머리로는 상상불가입니다. 원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인간관계, 부부관계, 가족관계의 질서가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주님의 부활이 오늘 내 실존에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통해 무엇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선 주님의 부활은 내 구원의 담보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부활을 통해 내 죄 문제, 내 죽음의 문제를 완전하고 완벽하게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내 구원의 담보요 보증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몸값으로 내 죄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만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내 죄값을 다 해결하지 못했으면 주님은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통해 내 죄값을 완전히 해결하셨다는 물증이 부활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부활은 내 부활을 보증하십니다. 주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내 앞에 주님이 부활의 시대를 개막하신 겁니다. 과수원하시는 분은 묘목을 심고 키워 첫 열매를 기다립니다. 첫 열매 이후 계속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부활은 내 부활의 담보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반드시 주님처럼 부활합니다. 


부디 허락하신 이 말씀을 통해 부활에 대한 신앙을 새롭게 확립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부활의 길이 트였습니다. 마지막 나팔만 울리면 우리는 다 주님처럼 그렇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구원과 부활을 확신하며, 늘 부활을 준비하고 대망하며 사는 복된 성도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UAzMrXLnx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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