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한 자(욥 6: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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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5
낙심한 자
욥 6:14-23
고난주간 목요일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하루 앞두신 오늘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오늘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 하셨고,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마 26:33)는 베드로에게는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욥 역시 지금 주님과 같은 심정으로 친구들에게 하소연합니다. 아무리 낙심하고 좌절하여 그 마음이 물처럼 녹은 자라 할지라도 친구들만큼은 그를 위로하고 동정하며 연민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인데 너희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니까 욥도 주님도 모두 친구들의 배신과 외면에 직면한 가장 고독한 순간을 맞은 것입니다.
변덕스런 형제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같이 지나가누나>(15절).
욥의 친구들은 원래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그의 병상을 찾았습니다(2:11). 그들은 다 지혜롭고 박식했으며 상식과 분별을 갖춘 사람들이었으므로 욥도 자신을 찾아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욥에게 잔혹한 비난과 책망을 쏟아 붓고, 위선자라며 정죄하고, 욥이 당한 모든 재앙이야말로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형벌이라며 도발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을 보면 종려주일에 있었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소개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민심이 목요일, 금요일에는 돌변합니다. <호산나>를 외치던 입으로 이제는 <살인강도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마 27:21)며 악을 썼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손바닥을 뒤집듯 그렇게 얼굴을 바꾸고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변덕이요 우리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데마의 떼들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19절).
데마 족속들은 이스마엘의 후손들로 아랍의 한 부족입니다. 그들은 큰 무리를 이루어 자주 대상에 나섰는데 특히 아라비아 사막을 관통할 때는 마실 물과 개울이 없어 큰 위기와 좌절을 겪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지금 친구들 앞에서 당하는 자신의 절망감을 극심한 기갈로 고통하던 <데마의 떼들>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달리셔서 욥처럼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하셨습니다. 왜 그 엄숙하고 긴박한 순간에 하필이면 <목마르다>고 하셨을까요? 물론 피를 많이 흘리셨으니까 목이 마르셨겠지요. 그러나 당시 주님은 그런 물리적인 갈증 외에도 끝끝내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에도 목마르셨고, 인생들의 배신과 학대에도 몸을 떠시며 사랑과 그리움에 목이 타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그 <목마르심>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으신 주님 최후의 고통이었던 셈입니다.
두려운 일을 보고 겁내는 자들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21절).
욥이 자기가 전에 잘 나가고 만사가 형통할 때는 다 자기에게 포옹하더니 지금은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뭔가를 구하고 짐이라도 지울까봐 자기를 꺼리고 경계한다며 참담한 비애감을 토로하는 대목입니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하더냐 … 내가 언제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22-23절).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제자들이 다 달아났습니다. 그렇게도 큰 소리를 치며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다짐하던 자들이 다 도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당하시는 고난이 행여 자신들에게 미칠세라 꼭꼭 숨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주님은 홀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셨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주님이 체포되시고 끌려가서 밤새도록 심문과 고문을 당하신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의 비겁한 모습들을 자성합시다. 그래서 더는 주님의 십자가를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다짐하고 결단하는 엄숙한 시간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