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80921m: 기도는 <강청>이다(눅 11:5-13)

2008년 9월 21일 주일낮예배
본문: 눅 11:5-13
제목: 기도는 <강청>이다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함께 나와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기도에 무슨 계절이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가을이 기도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분위기도 사색적이고, 게다가 수능도 있어서 더욱 가을이 기도하기에 좋습니다. 가을은 한 해의 결산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기도하기에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가을입니다. 바야흐로 기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기도에 더욱 정진하는 성도들 되시길 기원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떼쓰는 겁니까? 하나님께 구걸하는 겁니까? 어떻게든 하나님을 설득시키고, 필요하면 협박도 해서 내가 바라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기도는 근본적으로 “강청”입니다. 강청은 강력한 요구, 요청입니다. 원어적인 뜻을 그대로 옮기면 “수치심이 없는 뻔뻔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강청이란 겁니다. 얼굴이 두꺼워서가 아니고, 염치가 없어서도 아니고, 자기의 권리이기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요구하는 겁니다. 기도는 염치없는 부탁이 아닙니다. 마치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돈 내놓라는 요구와 비슷한 요구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미안해서 가급적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한 것도 없어서 양심적으로 허락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은 양심적인 것도, 겸손도 아니고, 아직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르게는 내가 뭘 달라고 해서 나까지 하나님을 괴롭힐 이유가 없어서 기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실은 잘난 체 하고 있는 겁니다. 기도는 부탁이나 설득이 아니고, 강청입니다. 나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가 강청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밤에 친구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립니다. 내게 손님이 왔는데 대접하도록 떡을 좀 달라고 합니다. 안에 있던 친구가 이미 옷을 다 벗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서 못 일어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먹을 것을 얻으러 간 친구는 체념하지 않고 너 빨리 안 일어나면 이 문 부수고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내가 너의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소용대로 준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얻으러 간 주제에 그렇게도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런 당당함에 친구가 승복했습니다. 친구의 무지막지한 강청에 손을 들고 결국은 먹을 것을 요구하는대로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손님이 왔다고 하면서 밤에 친구를 찾아가 먹을 것을 요구했던 사람은 대체 무슨 근거로 잠자는 친구 집을 두드리며 뻔뻔하게 떡을 강청한 것입니까? 잠자리에 들었던 친구는 어째서 그 강청에 승복해서 먹을 것을 내주었습니까?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그랬습니다. 둘은 아무리 밤에 찾아가 난리를 쳐도 전혀 흉이 안 되는 죽마고우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을 찾아 갔다면 떡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이어지는 9절과 10절입니다: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기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은 마치 밤에 친구를 찾아가 강청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찾고, 뻔뻔하게 두드리라는 겁니다. 비굴하게 구걸하지 말고, 거침없이 문을 두드리며 요구했던 이 사람처럼 강청하라는 겁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부모 자식 관계입니다. 11-12절입니다: “[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기도는 왜 강청입니까? 기도는 시가 아닙니다. 기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기도는 언어가 아닙니다. 기도는 관계요, 자격이요, 신분입니다. 이것을 밀고 나가는 게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본질적으로 강청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신분으로 밀고 나가는 겁니다. 말 못해도 상관없고, 문장이 세련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강청하는 겁니다. 아버지의 아들 된 신분을 밀고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아들 된 자의 자격이요 특권이요 권리입니다. 부모이기에 사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청구할 수 있는 게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관계요 자격이요 신분입니다. 부모에게 구걸하는 자식 봤습니까? 자식에게 적선하는 부모 봤습니까?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요구라도 내 부모이기에 뻔뻔하게 요청하는 겁니다. 자기가 맡겨 둔 것도 아닌데, 부모는 자식이 내놓으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내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 된 죄입니다. 자식은 그게 자기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터무니 없는 요구도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마지막 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따라서 기도는 자식 된 자가 부모에 대해 강청하는 겁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고, 응답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래야 기도가 방법으로 가지 않고, 자격으로 가고, 특권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도가 방법으로 가면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승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가 소나무 뽑으려고 하고, 목이 터지도록 외치려고 합니다. 기도는 자격이요 권리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특권입니다. 기도는 강청입니다. 이게 옳든 그르든, 사리에 맞든 안 맞든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아한 것이 아닙니다. 자꾸만 우리가 기도를 방법으로 가니까 나약해 지고 비굴해 집니다. 왠지 하나님께 미안해 지고, 송구스러워 기도를 자제하게 됩니다. 이것은 기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뻔뻔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 집을 찾아가서 강청하지 않고, 사정하고 설득했다면 그날 밤 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처음부터 강청했기에 떡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은 강청에 약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계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3). 강청 앞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보다 더 약하십니다.

그런데 13절 하반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 천부께서 강청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런데 구하는 것을 준다고 하지 않고 성령을 준다고 합니다. 이 대목이 동문서답입니까? 사실 이게 정답입니다. 강청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신다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이 우리 곁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돕고 해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파라클레토스, 곧 보혜사 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강청하든지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강청하든 보혜사 성령을 통해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해결되듯이, 우리는 이것, 저것을 하나하나 해결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이 가을에 강청이라는 기도에 매진하셔서 여러분의 모든 소원을 근본적으로 이루시고, 여러분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이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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