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를 받은 자(욥 5: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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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징계를 받은 자
욥 5:17-27
엘리바스의 주장과 사상은 다분히 인과응보적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욥의 고난이 곧 그의 죄 때문이라고 했고, 회개만이 그가 살 길이라고 강변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바스의 그런 입장도 인간사의 보편적 진리로 보면 결코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욥기서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의인의 고난>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죄로 인한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허용하신 일종의 연단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욥에 대한 고의적 징계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신앙세계를 계시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17절).
줄곧 인과응보적 사상으로 욥을 무참하게 공격해 온 엘리바스가 여기서는 한걸음 물러섭니다. 욥의 고난이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이나 응징이라기보다는 연단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징계가 오히려 복일 수도 있다며 욥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징계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징계의 출처는 명백히 하나님이십니다(잠 3:12, 히 12:5-6). 그리고 징계와 징벌은 엄연히 다릅니다. 징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닫게 하는 데 있지만 징벌은 죄에 대한 응징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의 채찍이 있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욥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진실을 인정하셨지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위해 사탄에게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그게 바로 욥에 대한 연단이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거나 노여워하면 안 됩니다. 진지하게 엄숙하게 많은 것을 생각하며 깨달으며 겪어야 합니다.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신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18절).
그렇습니다. 징계는 언제나 아픕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몸마저 병들어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정도의 차가 있을 뿐 징계란 다 그런 것입니다. 아내도 고개를 돌리고 친구들도 배신하고 동네 아이들마저도 그를 업신여기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여섯 가지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일곱 가지 환난에서 그 재앙이 미치지 않게>(19절) 하십니다. 또 <기근 때 죽음에서, 전쟁 때 칼의 위협에서 구원>(20절)해 주십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4).
당신도 이 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장수하다 무덤에 이르리라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26절).
징계를 잘 참고 잘 견디는 자의 축복 가운데 으뜸은 역시 <장막의 평안함>(24절) 즉, 가정의 평안입니다. 또 <자손과 후손>의 축복(25절)이요, <장수>와 복된 <임종>(26절)입니다. 욥의 경우는 그 외에도 많은 영적 축복까지 누렸습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체험했고(욥 42:5), 깊은 회개의 은총도 새롭게 체험했으며(욥 42:9), 차원 높은 영적 예배(욥 42:8), 제사장적인 기도(욥 42:8), 기도의 응답(욥 42:9) 등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요 축복이요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부디 징계에 아름답게 임하셔서 당신의 삶이 더욱 복 되고 풍성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