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080921n: <강청>해도 못 얻는 이유(약 4:2-3)

2008년 9월 21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약 4:2-3
제목: <강청>해도 못 얻는 이유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임은정 집사님이 낮예배 후에 저를 잠시 만나고 갔습니다. 집사님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어 무슨 요구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마음, 그런 자세가 잘못된 것이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하면 그 기도 자체에 힘이 없기에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힘있게 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기도의 가사가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저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기도하라고 권했습니다. 집사님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기도를 힘있게 하십시오. 씩씩하게 하십시오. 그래서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이 담대함입니다. 뻔뻔함입니다. 미안하기로 말하면 우리 중 누가 감히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다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어떻게든 좀 더 공격적으로 강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기도에 탄력이 붙어 하늘에 상달되고, 우리가 원하는 가사가 주님께 전달되어야 우리 기도에 응답의 메아리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야고보서에 의하면 강청하면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낮예배 본문에서는 강청하면 다 들어준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 하반절이하입니다: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얼마나 명쾌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불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데 알아서 좀 해주시면 안 되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몰라서가 아니라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 후에 주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알아서 챙겨주시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먼저 기도해야만 주십니다. 하나님 알아서 해달라며 기도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기도를 하되 강청으로 해야합니다.

그러면 떳떳하고 힘있게 강청하는데도 응답이 안 되는 경우는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칼이나 양잿물을 구하면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우리는 모두 어인 아기이기 때문에 내가 구한 것 때문에 내가 해를 입으니까 주지 않으십니다. 양잿물 주면 먹고 죽지 않습니까. 우리는 제법 진지하게 강청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기에, 우리가 아무리 강청해도 주지 않으십니다. 왜냐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강청기도의 전제는 ‘우리에게 덕이 될 때’입니다. 그러므로 강청해도 안 주시는 것이 바로 응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기어이 달라고 떼를 쓰면 더러 주실 때도 있습니다. 시편 106: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들의 영혼이 파리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맞습니다. 성령은 기도의 영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장으로 이끄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강청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다 응답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고 내 욕구에 따라 기도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모든 강청이 응답된다는 겁니다.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빌 바를 모릅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내 소망, 내 필요를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은 아십니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내 소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강청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다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를 돕고 계신다고 한 겁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전에 기도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수순에 맞습니다.

성령이 도우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내 소원보다는 하나님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언제나 성령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강청하게 합니다. 이것이 결국 내게 덕이 되고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래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별개가 아닙니다. 같은 것이고 하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타락해서 내 욕구와 현실적 필요가 자꾸만 잘못된 쪽으로 경도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제 각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함으로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서로 다르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욕에 쓰려고 내 소망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응답과 관련해서 이 두 가지를 주시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당당하게 강청해도 때로 응답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내가 강청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시로 성령 안에서 나를 성찰해야 합니다. 이럴 때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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