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8526",
  "title": "부르짖어 보라(욥 5:1-7)",
  "authors": [],
  "category": "qt",
  "dates": {
    "registered_at": "2012-03-24T01:20:12",
    "original_updated_at": "2012-03-24T01:20:12",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 class="p1">20120323 </p>
<!-- paragraph:p0002 -->
<p class="p1">부르짖어 보라 </p>
<!-- paragraph:p0003 -->
<p class="p1">욥 5:1-7</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욥의 세 친구들은 물론 의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등을 돌리고 떠나 갈 때도 그들은 서둘러 욥을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러나 욥에게는 그들이 끔찍한 트리오였습니다. 잘못된 조언과 정죄를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의 담론만 해도 그렇습니다. 부분적으로만 바르고 진실할 뿐 더 많은 경우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심한 상처로 피 흘리고 있는 친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가혹한 짓이었습니다.</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분노와 시기</p>
<!-- paragraph:p0008 -->
<p class="p1">&lt;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gt;(2절).</p>
<!-- paragraph:p0009 -->
<p class="p1">엘리바스의 언어가 더욱 직설적이고 즉각적입니다. &lt;아무리 부르짖어 봐라! 누가 너의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겠느냐&gt;는 빈정거림입니다.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lt;거룩한 자 중&gt;(천사) 누구도 너에게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악담마저도 서슴지 않습니다. 지금의 욥의 정서를 &lt;분노&gt;와 &lt;시기&gt;로, 욥을 &lt;미련한 자&gt;, &lt;어리석은 자&gt;로 단정하며 죽음과 파멸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는 결국 &lt;자식들&gt;조차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고, &lt;성문에서도&gt;(4절) 구해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lt;성문&gt;이란 &lt;성문 앞 광장&gt;이란 뜻으로 재판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덫과 올무</p>
<!-- paragraph:p0012 -->
<p class="p1">&lt;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gt;(5절).</p>
<!-- paragraph:p0013 -->
<p class="p1">욥이 당한 불행을 예로들어 죄인들에게 닥칠 재앙과 저주를 늘어놓습니다. 욥은 스바 사람, 갈대아 사람들에게 강도질을 당해 종들과 짐승들을 다 잃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세상에는 덫과 올무가 너무도 많습니다. &lt;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를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gt;(시 119:110). 또한 더욱 교활한 &lt;새 사냥꾼의 올무&gt;(시 91:3)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욥을 향해 입을 벌리고 탐욕스럽게 그의 모든 재산과 종들을 삼킨 덫과 올무는 결코 욥이 지은 죄의 대가는 아니었습니다. 의인도 얼마든지 덫에 걸릴 수 있고, 입 벌린 올무에 당할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공박은 너무도 완고하여 모든 재앙이 죄에서 올 뿐 일체 다른 가능성이나 여지는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 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자초한다는 주장입니다.</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티끌과 흙</p>
<!-- paragraph:p0016 -->
<p class="p1">&lt;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gt;(6절).</p>
<!-- paragraph:p0017 -->
<p class="p1">재난이 티끌에서, 고생이 흙에서 나는 게 아니라는 엘리바스의 말은 재난, 고생이 다 죄에서 난다는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죄가 바로 환난을 초래하고 저주를 부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재난에 처해지면 그것을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알고 신속히 회개해야 옳다는 주장입니다. 이렇듯 엘리바스의 담론은 잘 짜여진 논리에도 불구하고 욥의 문제의 핵심을 바르게 찌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기껏 &lt;대체 무슨 죄를 저질러서 욥이 이런 모진 비극과 재앙을 자초했단 말인가?&gt; 하는데 집중했을 뿐입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오직 욥의 믿음을 흔들고 무너뜨리기 위해 보냄 받은 사탄의 충실한 도구 역할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진심으로 상처받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온유함을 강조하십시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