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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성전 앞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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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lt;목마와 숙녀&gt;로 유명한 박인환의 시 &lt;영원한 일요일&gt;입니다. &lt;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 / 나는 폭풍에 싸여 / 주검의 일요일을 올라간다. / … 절름거리며 교회에 모인 사람과 / 수족이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 복음도 기도도 없이 떠나는 사람 / 상풍(傷風)된 사람들이여 / 영원한 일요일이여.&gt;</p>
<!-- paragraph:p0002 -->
<p class="p2"><br></p>

<!-- paragraph:p0003 -->
<p class="p2">그는 여기서 &lt;복음, 기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gt;며, &lt;허무&gt;의 시간만이 영원히 되풀이 될 것 같은 절망을 토해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lt;영원한 일요일&gt;이란 그에게는 종교적 성일이 아니라 지루하고도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쓸쓸함과 언제 끝날지 모를 &lt;표류의 시간&gt;을 의미할 뿐입니다. 얇은 도화지 위에 회색 크레용으로 그린 돌계단이 있는 교회의 첨탑과 그 앞에 서 있는 인생들의 우울한 표정을 보는 듯한 그의 이 시에서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시대와 교회 밖을 서성대는 쓸쓸한 인간 군상들을 만납니다. </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2">장애인 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 어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lt;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gt;(행 3:2)라는 표현에서 이미 그의 운명적인 절망감이 느껴집니다. 그의 비극은 무엇보다도 홀로 걸을 수가 없다는데 있었습니다. 움직이려면 언제나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어떤 사람들이 날마다 성전 문 앞까지 업어다 주어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연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선천적인 불행은 그로부터 모든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그라한들 왜 한 때는 자기 운명에 저항하는 몸부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체념을 거듭하는 동안 이제는 자신의 모든 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눈에는 더이상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직 손바닥에 놓인 몇 닢 동전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려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lt;우리를 보라!&gt;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 여전히 &lt;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봤다&gt;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 두 사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때는 앉은뱅이 거지의 운명처럼 절망과 체념 속에 주저앉아 갈릴리 호수에 손을 내밀어 그 얻어지는 몇 마리 물고기로 연명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을 만나 고기 낚는 어부에서 일약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웅대한 꿈을 안고 막 새 삶의 발돋움을 시도하는가 했는데 어이없게도 잔인한 인간들이 그들의 희망이었던 주님을 죄인으로 몰아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처형하여 무덤에 장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여 별수 없이 갈릴리로 돌아와 절망 속에 주저앉아 있던 그들이 다시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앉은뱅이를 향해 &lt;은과 금은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gt; 합니다. 그것은 모진 운명의 사슬로부터 거지 앉은뱅이를 해방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서 보지 못했던 두 다리로 일어나서 활기차게 걷고 뛰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이제껏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왔던 &lt;성전 안&gt;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대목입니다. 단지 구걸행각을 위한 무대에 불과했던 성전이 이제는 그의 삶의 중심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기껏 성전 앞 인생이었던 그가 이제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진입하면서 연민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자신의 변화된 삶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운명의 족쇄에 묶인 채 오직 성전 밖에서만 머물던 사람이 거기서 풀려난 기쁨과 삶에는 금과 은 이상의 차원이 있음을 온 몸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2">오늘날도 비록 몸은 성전 안에 있을지라도 그 마음과 영혼은 여전히 성전 밖에서 떠돌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기적은 낙심과 좌절, 그리고 헛된 욕망으로 방황하던 영혼들이 다시금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로지 금과 은만을 쫓아다니던 삶에서 과감히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회복하는 힘이자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