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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울부짖음(욥 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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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2031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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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울부짖음 </p>
<!-- paragraph:p0003 -->
<p class="p1">욥 3:1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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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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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처절한 욥의 울부짖음이 계속됩니다. 낙심과 좌절 때문에 거의 방향감각을 잃었습니다. 판단력마저도 상실한 채 과장된 표현으로 진실과는 영 다른 방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련과 고통 중에도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강한 신자라해도 언제나 깊은 절망과 상심에 빠질 수 있음을 생각하며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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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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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lt;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gt;(12절). </p>
<!-- paragraph:p0009 -->
<p class="p1">욥은 자신의 생명을 원망하고 자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지 않는 데 대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다 이제는 자기가 왜 어머니의 젖을 빨았던가 하며 후회합니다. 갖 태어난 자기를 어머니가 돌보지 않았거나 자신이 어머니의 젖을 빨지만 않았어도 이토록 처절한 아픔과 고통은 당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탄식입니다. 또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도 &lt;내가 평안히 누워 자고 쉬었을 것&gt;(13절)이라고 합니다. 욥이 여기서 &lt;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gt;(14-15절)이라고 한 것은 왕들과 고관들의 무덤 속에 함께 부장했던 보화들을 가리키는 말로 죽은 자들은 누구나 공평하며 무덤 속에서 다 함께 만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릎이 우리를 해치지 않고 우리가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은 다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마음에 자식을 사랑하는 천륜을 두신 겁니다. 우리가 누린 모태의 복과 젖가슴의 복은 누구도 감히 모독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원초적이고도 주권적인 축복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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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어찌하여 낙태되지 않았던가</p>
<!-- paragraph:p0012 -->
<p class="p1">&lt;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gt;(16절).</p>
<!-- paragraph:p0013 -->
<p class="p1">바울은 &lt;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gt;(롬 14:8)고 했고, 또 바로 그런 마음가짐과 고백이 우리의 지혜이고 본분이 되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욥은 자신이 남모르게 낙태되어 땅에 묻히지 못한 걸 애석해 하며 &lt;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gt;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lt;지금 이 참혹한 모습으로 재 위에 누워있느니 무덤 속 티끌 가운데 누워있었더라면 이보다 더 나았을 것을!&gt; </p>
<!-- paragraph:p0014 -->
<p class="p1">1877년 존 헨리 뉴먼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lt;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뭔가 특별한 봉사를 하도록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나는 사명자입니다. 그게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내 이성으로는 다 알 수 없지만 훗날 내세에 이르면 반드시 모든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내가 병중에 있다면 그 병을 통해, 슬픔 가운데 있다면 그 슬픔을 통해 나는 그분을 섬길 것입니다. 그분은 어떤 일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내 친구를 데려가실 수도 있고, 내 영혼을 낙심케 하실 수도 있고, 나로 하여금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그분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살 것입니다&gt;. 이게 바로 우리 모든 신자들이 고난의 현실에 대해 고백하고 다짐해야 할 신념입니다. 고난이나 절망에 함몰되어 죽음을 예찬하는 따위는 결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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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리</p>
<!-- paragraph:p0017 -->
<p class="p1">&lt;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gt;(17절).</p>
<!-- paragraph:p0018 -->
<p class="p1">그건 사실입니다. 천국은 영혼의 안식처요 무덤은 육신의 안식처입니다. &lt;그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한 곳&gt;(계 21:4)이 천국이요, &lt;악한 자가 소요를 그친다&gt;고 한 대로 &lt;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gt;(계 21:8)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더 이상 &lt;감독자의 호통 소리&gt;도 &lt;큰 자들과 상전들&gt;의 횡포도 없는 곳, &lt;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먹는 곳&gt;(사 11:6)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이생이 고달프고 힘들다고 아무나 훌쩍 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모든 인생들의 삶과 죽음은 오로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입니다.</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