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20311n: 동역자들(골 4:7-11)

2012년 3월 11일 주일오후예배/남선교회헌신예배

본문: 골 4:7-11

제목: 동역자들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요즘도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힘듭니다. 평생 한 교회 개척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바울 경우는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건이나 환경이 열악했음에도 15개 처나 개척했습니다. 그는 비교적 일찍 순교를 당했는데, 그럼에도 초인적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바울은 특정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거기서 지속적으로 목회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도시나 지방에 들어가 전도해서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 일꾼을 임명한 다음 다른 지방과 마을로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무려 15개 처가 넘는 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에베소에 3년을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바울이 한 곳에 가장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편지로, 동역자들을 통해서 자기가 세운 교회를 지도했습니다. 바울이 지도한 교회는 바울이 직접 전도한 곳도 있고, 바울의 전도를 받은 동역자가 세운 교회도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근처 에베소에서 전도하며 머물 때 에바브라 라는 사람이 에베소에 왔다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고향 골로새로 가서 세운 교회가 골로새 교회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편지로,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지도했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의 소중한 동역자였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근처의 히에라볼리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까지도 관리를 했습니다. 그만큼 에바브라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며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를 표현하기를, 7절입니다.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바울이 내린 동역자에 대한 정의요 규정입니다. 바울은 자기 동역자를 사랑 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라고 했습니다. 11절 하반절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이런 동역자들이 바울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을 통해 바울은 위대한 일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기독교를 세계화시켰습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독교 모습이 달랐을 겁니다. 바울조차도 혼자서 일한 것이 아닙니다. 동역자들의 아름다운 사역이 함께 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의 사랑 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인 동역자들의 면면을 보겠습니다. 7절을 보면 두기고가 나옵니다. 바울은 그를 소중히 여겼고 사랑했습니다. 두기고는 여기뿐 아니라 바울서신에 5번 정도 이름이 더 나옵니다. 항상 신실한 동역자로 나옵니다. 그는 주로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전령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이 옥에 있으면서도 소아시아에 퍼져있던 교회를 지도했는데, 두기고가 부지런히 바울의 편지를 일선 교회에 전달한 것입니다. 골로새서도 두기고가 로마 감옥으로부터 골로새 교회로 전달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도 6장 21절에 보면 두기고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의 편지를 받아 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을 보면 에베소 교회가 모금했던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전달했던 사람도 두기고였습니다. 그러니까 서쪽으로는 로마로 가고, 동쪽으로는 팔레스틴까지 갔습니다. 거리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도 도보로 다녔습니다. 두기고도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혼자서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전령 노릇하며 다녔습니다. 두기고의 이런 헌신과 희생, 동역이 없었다면 오늘날 골로새서도 에베소서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사람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고 고백할만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남선교회 회원들이 두기고처럼 신실한 동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직업적인 성직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위한 희생을 마다않고 기꺼이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던 주님이나 오늘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나 같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동역자를 바라십니다. 


다음은 아리스다고입니다. 10절 상반절입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이 사람도 오늘 본문 외에 바울서신에 4번 정도 더 나옵니다. 아리스다고는 언제나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폭도들에게 돌에 맞아 혼절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끌어다 놓는데, 그때 그는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호송당하다가 유라굴로를 만날 때 그 배에 아리스다고가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지금도 아리스다고가 바울 곁에 같이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의 그 험한 여정에 항상 동행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사람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11절에서 바울이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내가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이 많이 모이나 나쁜 일을 당하면 다 달아나는데, 아리스다고는 어려운 일, 아픈 일을 겪을 때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이게 진정한 동역자입니다. 남선교회 회원들은 아리스다고와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남에게 위로와 소망, 기쁨이 되는 신실한 동역자들 되십시다.


유스도 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를 들어 할례파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라고 평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로는 할례당도 있었던 것입니다. 할례당은 초대교회 최대의 이단이었습니다. 바울로 말하면 가장 열정적인 복음주의자인데 어떻게 율법주의를 용납할 수 있었냐는 겁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믿음의 신념이 다른 자들도 용납하며 포용했다는 뜻입니다. 바울도 대단하지만 유스도도 대단합니다. 복음주의의 대표자인 바울을 할례당이 와서 도운 겁니다 우리는 나와 신념이 다르면 가차 없습니다. 바울도 유스도도 대단합니다. 신앙노선이 다른데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로 뭉친 겁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대의를 위해 우리는 타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완고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고향 따지고, 직업 따지고, 학력 따집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굉장히 놀랍니다. 어떻게 바울이 할례당을 용납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여러분, 상대가 누구든 주의 일을 위해서는 타협도 할 줄 알고, 포용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에 덕이 되고 주의 일에 도움이 된다면 말입니다. 할례당이 바울의 이런 동역자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더욱 큰일을 위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포용해야 합니다. 복음주의자인 바울도 위대하지만 바울과 함께 동역했던 유스도도 대단합니다. 분명 우리도 이 사실을 통해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주의 복음을 위해 바울과 동역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남선교회 회원 모두가 이런 아름다운 동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mGp1jwcCO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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