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절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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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바람입니다. 계절풍입니다. 오늘로서 4월 11일 총선이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 공천은 물 건너갔다는 비난과 함께 공천 후폭풍이 거셉니다. 야당대표가 피로 누적으로 병원신세까지 졌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은 정치도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는 뜻일 텐데 어제까지만 해도 교수, 변호사, 기자, 기업가, 연예인으로 지내던 사람들이 오늘 불쑥 국회의원 하겠다며 공천 아귀다툼을 벌이고, 서슴없이 사람들을 적과 동지로 편 가르는 일에 열 올리는 걸 보면 안철수로 상징되는 탈이념 비투쟁적 세력이 전면에 나서기에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너무 당파성 이념성이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처럼 역사는 어떤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후세대들에 의해 반복되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민족의 역사도 그런 어리석고 고집스런 죄의 반복이었음을 여과 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 마음과 심령 속에 비장한 청산과 결단이 없는 한 과거의 잘못된 습성은 끈질긴 관성을 가지고 생존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악의 외양보다는 그것의 뿌리를 향해 진격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행동의 외적 방식에 주목했다면 주님은 자칫 그런 것들이 내포할 수 있는 위선과 가식을 폭로하셨습니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혼이 온갖 인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세계와 자신을 적극적으로 관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열매지 현실과의 단절 속에서 자기 내면에 영혼의 도피처를 만드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님도 분명히 하셨습니다. 현실과의 적극적인 대결을 피하는 신앙은 결국 사탄의 힘에 굴복하는 꼴이 되고 말테니까요. 주님의 십자가는 다름 아닌 그 치열한 대결 끝에서 이루어진 승리의 깃발이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왔습니다. 대세인 어두움 속으로 주님이 끌려 가셨습니다. <아,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주님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하는 좌절감과 함께 앞으로 닥칠 일들이 공포처럼 제자들을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신앙의 급작스러운 붕괴였으며 악의 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현실에 대한 불가피한 승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지금 주님을 멀찍이서 따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님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것입니다. 너무 멀면 양심이 괴롭고 너무 가까우면 제 신변에 이로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베드로만의 사정이겠습니까? 따르는 흉내는 내야겠고 제대로 따르자니 불이익이 두렵고 그래서 엉거주춤한 오늘날의 교회들, 용케도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심문하고 침 뱉고 주먹으로 치며 조롱하는 동안 베드로는 하인들 틈에 끼어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미국의 유력한 지역신문인 <볼티모어 선>지의 칼럼니스트 칼 로왼이 미국 내 군사적 광신도들이 다시금 전쟁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철군으로 군수산업이 위축되자 또 다시 미국과 이스라엘을 부추기며 이란과 북한에 대해 <말로만 위협하거나 말장난에 놀아나 군량미 대 줄 생각만 하지 말고 총칼 쓰는 일에 좀 더 과감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발 주님의 화평케 하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주님과의 밀착거리를 유지합시다. 총선을 위해 빡세게 기도하며, 원수됨의 벽을 허무신 주님을 고백하는 일에 결코 인색하지 맙시다. 이 위기의 시대,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